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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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속뜻에서 분리된 겉뜻 안에 있는 자들의 성품에 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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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속뜻에서 분리된 겉뜻 안에 있는 자들의 성품에 대하여.

 

 

이들은 말씀에서 인애에 속한 교리를 결코 얻지 못한 자들이고, 그리고 다만 말씀의 문자적인 뜻에만 머물러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인애속한 교리나, 믿음의 교리는 말씀의 내적인 것을 가리키고, 문자적인 뜻은 말씀의 외적인 것을 가리킨다. 말씀의 속뜻에서 떠나 말씀의 겉뜻 안에 있는 자들은, 역시 외적인 것들을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로 예배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내적인 것에 분리되어 있으나 거룩하고 신령한 것으로 여겨, 외적인 것들을 예배하기 때문에, 그들은 내적인 것에 떠난 분리된 말씀 안에 있다. 야곱의 자손들은 이런 인물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희생제물을 바치고, 희생제물을 먹을 때, 그들은 모든 죄악들이 모든 범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적인 것에서 떠나 그들의 외적인 것 안에 있을 때, 희생제물은 예배에 속한 가장 거룩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소들, 불깐 소들, 어린 양들, 암염소들, 양들, 숫양들, 수염소들도 그 때 거룩하다고 상상하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단”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라고 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제수의 빵이나 헌주의 포도주도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옷을 세탁하고, 자신들의 옷을 씻을 때, 그들은 모두 깨끗하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제단의 꺼지지 않은 불이나, 등잔의 불도 거룩하다고 믿고, 진설병이나 도유의 기름이나 그 밖의 모든 것들도, 거룩하다고 믿는다. 그들이 그와 같이 믿는 이유는 그들이 내적인 것들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내적인 것들을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이나, 백성에 비하여 으뜸으로 고위직이나 재물에 뛰어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 목적을 위하여 여호와를 사랑하였다.

꼭 같은 이유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께서 그들의 구원과 영복을 위하여, 이 세상에 강림한다는 것도 듣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이 세상의 모든 자들에게서 뛰어나기 위하여, 그저 그렇게 하였을 뿐이다. 역시 그들은 상호적인 사랑이나, 이웃에 대한 인애에 관해서 이웃이나 그 선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만 그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에 비례하여 자기 자신을 목적해서 그러했다. 만약에 그들이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원인을 위하여 적개심에서 대하고, 미움으로 행동하고, 원수 갚고, 잔인한 것을 행하였다면, 그들은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만약에 그들이 주님을 믿는 사랑이나 믿음의 교리를, 영접, 수용하기를 원하였다면, 그리고 이웃에 대한 인애의 교리를 영접, 수용하기를 원하였다면, 아마도 크게 다를 것이다. 그 때 그들은 번제물이나 희생제물, 곡식제물, 헌주나 제물을 먹는 것이, 그 어떤 죄악이나 범죄에서 그들이 정결하게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예배에 의하여 그들이 정결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회개에 의하여 그들이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그 때 알고 믿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옷의 세탁이나 몸의 목욕이 어느 누구도 정결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에 속한 정화를 이룬다는 것, 그리고 마찬가지로 제단의 불이나 등불이나, 그리고 진설병이나 도유의 기름이 그것 자체의 거룩함이 아니고, 그것들이 뜻하는 내적인 것들에 의하여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거룩한 내적인 것 안에 있을 때,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그리고 주님에서 비롯된 모든 것은 모두 거룩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만약에 그들이 사랑이나 인애에 속한 교리를 영접, 수용하였다면, 이와 같은 내적인 것들을 알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교리가 감싸고 있는 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교리나 말씀의 속뜻을 잘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말씀의 속뜻은 주님사랑이나 이웃사랑에 속한 진정한 교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가르치셨는데, 주님께서는 두 계명, 즉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뜻이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2:37-40)

 

이러한 내용은 지금의 기독교회와도 아주 흡사하다.

오늘의 기독교계는 주님사랑의 교리나, 이웃사랑의 인애의 교리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따라서 천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애를 가리키는 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적인 것에서 멀리떨러진, 외적인 것 안에 있다. 왜냐하면 천적인 선이나, 영적인 사랑이나,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된 믿음에 속한 진리가 속사람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배하고, 인도하는 교리가 결여된 작금의 말씀의 겉 뜻은 어디에서 어느 누구도 즐겁게 하는 것으로 휘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랑이나 인애의 교리에서 멀리 떨어진 믿음의 교리는 한밤의 어둠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이나 인애에서 비롯된 믿음에 속한 교리는 한낮의 빛과 같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랑이나 인애에 속한 선은 불꽃과 같고, 믿음에 속한 진리는 그것에서 비롯된 빛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계의 사람들은, 이런 상품이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것에서 멀리 떨어진 외적인 것들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진리를 위한 진리에 의하여, 거의 감동 되지 않는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선이 무엇인지, 인애가 무엇인지, 이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속사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천계와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어느 누구나 사후 즉시 생명을 소유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교회의 교리에 남아 있는 그런 부류의 인물들은 그것들이 거짓인지 참인지에 대하여서도 전혀 관심이 없다. 마음에서부터 인애에 속한 선을 실천할 목적이 아니고, 그리고 또한 그들의 영혼의 구원이나, 그들의 영복이 목적이 아니고, 다만 세상의 번영이나 성공을 목적해서, 다시 말하면 그들이 명성이나 영예나 재물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그것들을 배우고, 그것들을 확증한다. 따라서 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조용의 상태에 있지 않고, 그리고 문자들 뒤에 있는 말씀 안에 내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그들은 부인한다. 9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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