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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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전환기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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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14.12.219

『내가 지은 「동물계」는 이해를 통해서 받아들여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두고 쓴 것이다. 그들은, 그들보다도 숭고한 것을, 보기를 들면 영혼이 있다는 것 보다는, 없다는 쪽에 마음이 기울기 마련이다. 안 없어짐(불멸성)과 하늘나라라고 하는 것을, 그들은 텅 빈말, 지어낸 이야기로 여겨, 아니라고 한다. 그들은 자연과 세상과 그들 스스로를 예배하고, 그들 스스로를 짐승에 비교해서, 그 영혼은 흩어져서 없어져 버린다고 믿고 그래서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이 옳지 않은 일에 함부로 뛰어든다……. 이러한 사람들을 내 마음에 두고,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고, 「동물계」안에서 스베덴보리는, 그 책을 저술한 뜻을 밝히고 있다. 말을 바꾸면 이 책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몸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영혼의 산 모습(생태)을 밝혀서, 그것을 통하여, 그들을 하나님 믿음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다. 영혼의 사는 모습을 밝히려면, 그 영혼의 다스림을 받는 몸의 짜임을 해부학 적으로 밝혀내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그래서 그는 영혼이, 또는 정신이 맨 처음 생겨난 곳이 머릿골의 가죽질(皮質) 원 바탕인 것은 밝혀냈지만, 영혼 또는 정신의 밑바탕은 아직 그에게 분명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 밝혀지지 않은 것을 직각의 힘으로 밝혀진다는, 곧 안에서, 영혼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직각의 경험은, 자아성(自我性)의 불결함과 함께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에 자아성의 불결한 것이 깃들어 있는 동안은, 영혼은 그 지식과 지혜로써 사람의 마음에 흘러들 수는 없다. 그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는, 자아성의 불결한 것이 없어져야만 한다. 『이 이론은 이제 바로 받게 될 경험 속에서 증거되게 되어 있었다.』고 「서사시, 스베덴보리」를 쓴 C.O, 시그트네드 부인은 적고 있다.

 

 

바야흐로 스베덴보리의 삶이 달라지는 커다란 변화가 시작 되었다.

 

 

그 변화는, 그가 오란다 에서 「동물계」를 쓰고 있는 동안에 시작되어, 런던에서「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낸 뒤에도 이어졌다. 그것이 끝났을 때, 그는 아주 해부학 연구를 내어 팽개치고, 성서를 연구하는 데로 빠져 들었다. 그 변화는, 앎을 넘어선 힘에 그 자신의 앎을 따르게 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합리성을 그 힘에 내 맡기는 것이었다.

 

 

이 동안에 스베덴보리가 겪은 마음의 갈등에 대해서는, 만일 지금부터 140년 전쯤에 눈길끄는 한 책의 초벌 원고가, 나이 많은 한 교수*의 문서 사이에서 찾지 못했다면, 거의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그것은 호주머니용으로 된 예순아홉 쪽의 공책이고, 주로 스웨덴 글로 가득 채워 있었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적는 식으로 쓴 것이지만, 거의 다 스베덴보리가 1744년 [56세]에 본 꿈을 쓴 것**이요, 「꿈일기」라고 제목을 달았다. 그 내용은, 스베덴보리 자신의 적바림[비망록]으로서 적혔기 때문에 가끔 심하게 줄여져서 뜻을 이해하는데 어렵게 되어 있다.

 

 

대강 그 꿈은 스베덴보리 마음속에서 일어난 매서운 싸움, 곧 한쪽에선 평생을 종사한 과학적인 방법에 기대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의 깨달음의 문을 두드리는데, 그것은 그 스스로 나아가서 그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는, 또 들어오려고도 하지 않는 부르심과의 사이에서, 찢겨나가는 마음의 갈등을 적고 있다. 그것은 또 몸의 지각이 뒤얽혀 있는데서, 또 이론에 기대어 있던 데서 풀려나, 천천히 영혼을 거쳐, 알면서(의식적으로)빛을 받아가는 마음의 정신적인, 정서적인 모양을 적고 있다. 그리하여 이른바 몸과 영혼의 분리가 일고, 생각은 맑아지고, 안쪽의 이끄심에 온전히 따르는 것이었다.

 

* 베스테레스의 R,세린슨 교수, 그는 1849년 90세에 죽었다. 그 초벌원고는 10년 동안 그의 서류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버려져 있다가, 나중에 그의 상속인에게서 스톡홀름의 왕림도서관이 바로 사들였다.

 

 

** 일기는 1744년[56세]3월 24일부터 같은 해 12월 27일 까지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 가운데에는 그 이전의 꿈을 몇 가지 적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 인상은, 물리적인 인상에서 갈라져서 천천히 높은 능력에 따르게 되어서, 그 능력은 물리적인 인상을, 물질적이 아닌 영적인 것을 표상하는 상징으로써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물질적이 아닌 것은, 그 꿈속에서 상징의 꼴로 나타났고 그가 그 상징의 뜻을 반성할 때, 그 꿈의 뜻은 그에게 환하게 밝혀졌다.

 

 

보기를 들면, 그의 너절(조잡)한 생각은 그에게 꿈속에서 넝마 무더기로 표상되고, 그의 많은 깨끗하지 못한 것들은, 그가 집어내야 할 해로운 벌레로 나타났다. 그는 자기가 지저분하고 더러운 작고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그 집에 우주를 지으신 분이시며, 가장 높으신 이를 초청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는 우쭐된 행동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집의 창 밑을 지나가는 군인들은, 그가 위험하고 해로운 데서 지켜지고 있다는 표였다.

 

 

「꿈일기」에 적힌, 한 사람의 가림 없는 혼의 고백보다 더한 것은 아마 다른데서는 볼 수 없으리라. G. 트로 부릿지 씨의 말을 소개 하겠다.『어떤 사제도 아직껏 그보다 더 성실히 고백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고, 또 그보다 더 저를 낮추고서 뉘우치는 자에게 용서를 내린 일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제 길을 고르는 데로 쏠리는 것을, 많은 경우에 인정하고 있다.

 

『내가 나를 하나님의 은총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처럼 맡겨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는 것을 허락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내 속에 있었다.』그는 달라짐이 그의 삶속에서 일어나, 새롭고 높은 일이 그의 앞에 놓인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목숨을 기울여서 탐구한 과학연구를 버릴 수는 없다고 느꼈다. 그러할 때에 그가 쓴 것은, 단지 엉터리요, 목숨과의 관계가 완전히 빠졌다고 그는 말한다. 어떤 꿈속에서, 그는 그의 말이 나르지 못할 짐을 진 것을 보았는데, 그 짐은 그가 해부학에 대하여 앞으로도 이어가야 할 연구를 가리키고 그 논문을 너무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순수하게 이세상의 연구 과제에서 마침내 떠나야만 할 것을 미리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망의 형편은 아주 드날린 기쁨의 형편으로 바뀌었다. 꿈에서 그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데, 때마침 길이 다시 비추어서 환해지는 것을 보았다. 눈을 뜨자 그는, 아무 가치도 없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쓰러져 울었다. 어릴 적부터 익히 부른 찬송가의 가락과 노랫말이 이어서 떠올랐다.

 

 

예수님은 내 동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

그분을 세상이 버린다고

내가 어찌 버릴까

나도 예수님을 떠날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예수님의 아름다운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

내 마음은 언제나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예수님의 마음과 한 가지.

 

 

『꽃봉오리가, 푸른 꽃봉오리가 열린 것같이도 보인다.』고 그는 적고 있다.

 

그가 비로소 자기를 잊은 기쁨을 경험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나서 있었다.

 

 

부활절 잔칫날이었다. 스베덴보리는 주님의 성찬식에 참석했다. 저녁에, 그의 마음은 수많은 시달림을 겪었다. 내적인 흐뭇한 느낌과 밖의 설움이 엇갈렸다. 꿈에서 그는 한 아는 이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가 그 동아리에 들라고 자꾸만 조르는 것을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막놀아남(방종)과 부(富)와 헛된 영화를 뜻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달림(시련)의 형편이 지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구석구석에 느끼고, 하나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기로 마음먹음과 함께 하늘나라의 복을 느끼는 무엇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상태가 이어서 일어났다.

 

 

이 일이 일어나서, 1744년[56세]4월 6일, 그는 오란다의 서울 헤그에서 델후트에 갔는데, 그동안에 깊은 영적 명상에 빠져 들었다. 그 밤, 델후트에서 그는 평생의 맨 꼭대기라고 할 일을 경험했다.

 

 

그는 저녁에, 모세를 들어서 행하신 하나님의 신기한 일을 읽다가, 무엇인가 제 이지(理智)같은 것이 섞여드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요구하는 강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는 믿었다. 하지만 믿지는 않았다. 성가신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어째서 메뚜기를 모으는데 바람을 썼는가?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물음을 제게 넣고 시험하고자 하는 자를 물리쳤고, 그의 간사한 꾀를 비웃었다. 그는 난롯불을 쳐다보면서, 만일 내가 그것을 아니라고 한다면, 그 난롯불이 있는가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밖의 깨닫기는, 하나님 스스로의 말씀보다도 더 사람을 헤매게 하는데, 하나님은 진리 바로 그 스스로 이시기 때문이다, 고 제 자신에게 말하였다. 그는 열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반시간쯤 지나니까 많은 바람이 한데 뭉쳐서 불어오는 듯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저도 모르게 머리에서 발까지 세게 흔들려서, 무언가『이루 말할 수 없는 거룩한 것』이 몸 가까이 있어서, 그를 흔들고, 얼굴을 엎드리게 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일까, 수상히 여기면서도, 『아!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그 크신 자비로써, 이처럼 큰 죄인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이 은총에 나를 알맞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손을 모으고 빌었다. 그러자 한 손이 나와서 세차게 그의 손을 쥐었다. 그는, 그분의 품안에 안겨 있었다. 그는 그분의 얼굴을 바로 보았다.『그것은 거룩하신 얼굴 모양이었다. 무엇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었다…….그 얼굴 모양은, 또 그분께서 세상에 계실 때와도 다르지 않았다. 그분은 나에게 건강증명서가 있는가를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주님, 당신은 그 일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하시오」하고, 그분께서 말씀 하셨다. 이것을 스베덴보리는 『나를 마음으로 사랑하여라.』, 또는 『네가 약속한 것을 하여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서, 다시 덧붙이고 있다. 『아, 하나님이시여, 그것을 위하여 나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나는 그것이 내 힘 속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떨면서 눈을 떴다.』

* 건강증명서는 배가 출 항시에 승선자의 건강에 관해서 당국이 발행하는 일종의 증명서

 

 

자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형편에서, 그는 방금 일어난 일을 반성하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인가.』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죄겠지. 그리도 우리들은 영을 시험해 보라는 명을 받고 있다.

 

그는 제가 어떻게 하여서 깨끗해 졌는가, 어떻게 해서 그 일을 위하여 대비하였는가, 어떻게 해서 얼굴을 엎드렸는가, 어떻게 해서 그 기도가 내 입에서 나왔는가를 저살핌 하였다. 『 저런 울부짖는 소리를 내면서 내려오셔서, 엉겁결에 나를 땅에 엎드리게 하고 , 기도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셨다. 그래서 내가 「그분은 예수 바로 그분이다!」고 한 것이다』고, 그는 말을 맺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요, 내 스스로의 일이 아니기에, 은총과 사랑을 받들어 모셨다……. 이따금 나는 엉겁결에 쓰러져 흐느꼈다.

 

그것은 슬퍼서가 아니요, 우리들의 주님이 그처럼 값없는 죄인에게, 그리도 큰 은혜를 보여주신데 대한 크고, 깊은 기쁨 때문이었다.』

 

 

스베덴보리를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거룩한 사람으로서 존경할 뿐만 아니라, 성자로서 우러러 받들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죄이다. 그는 제가 그러한 죄에 조금이라도 내맡기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빌었다. 그리스도만을 우러러 받들지 않으면 안 된다. 나 자신은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도 더 값없는 자이다. 제 죄는 다른 이들보다 더 깊은 뿌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죄보다 더욱 크다. 『영의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것만을 나는 알았다……. 그 영의 일에 대해서는, 제 스스로를 낮추는 것뿐이다……. 성령은 이것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 낮춤이야 말로 모든 것의 뿌리이다』

 

 

그는 자기만을 찾는 사랑이 늘 마음속으로 숨어 들어온 것을 적고, 그 저 믿음(자부(自負)의 한 보기로써, 누군가 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할 존경을 보이지 않을 때, 언제나 자기는 『당신이 내가 얼마만큼이나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당신은 그런 행동거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생각하였던 일을 들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저 믿음의 생각을 용서해 주실 것을 빌고, 『아마 그것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곧 받겠죠.』라고 덧 붙였다.

 

 

어느 때 그는 누군가 밥상에서 그 동무에게 남아돌아갈 만큼 돈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슬퍼할 일이 있을까, 라고 묻는 말을 들었다. 그는 혼자 웃었다. 그 물음이 내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쨌든 모든 물건이 넉넉한 자는, 그 보다는 더 깊은 성질의 슬픔에, 마음과 혼이 바래질 것이라고 대답했으리라.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은 틀림없이 증명할 수 있다. 나는 들 온돈(수입)만으로도 푸짐하게 살 수 있고, 어쨌든 마음에 품은 것을 실지로 나타낼 수가 있고, 더 그 비용을 웃도는 들 온돈을 얻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삶에 필요한 물건이 모자라서 일어나는 설움 또는 답답함은, 수준이 낮은 것이므로, 다만 몸에 걸린 것으로, 다른 성질의 것하고는 맞설 수 없다…….』

 

 

그는 어느 책방을 지나칠 때 내가 지은 책은 다른 이의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생각이 그를 덮쳤다. 『그러나 나는 곧, 사람은 서로 남을 섬기고 있고, 우리들의 주님은 셀 수 없는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준비하시기 때문에, 책마다 좋은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 생각을 눌렀다……. 그럼에도 자랑하는 마음이 곧 머리를 쳐들었다. 하나님이시여, 이것을 막아 주시옵소서. 힘은 당신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나에게 겸손한 생각을 주시옵소서. 나는 나의 여림과 잡됨과 가치 없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꿈일기」34쪽)

 

 

그는 자기가 해부학을 궁리하는데 얼마나 끌렸으며, 영적인 으뜸제목보다도 철학적인 으뜸제목을 더 배우기를 바랐던 일을 적고 있다.

 

 

그는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바랐을 뿐 아니라, 자기가 지은 책을 자랑하는 것까지도 바라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과학을 지나치게 사랑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을 멀리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에 빠져서, 벌벌 떨었다. 그것은 영의 음행이며, 거기로 그를 꾀어 들이려고 영들은 끊임없이 작용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은 사랑을 맨 위로 두면 다른 일을 찾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앎은, 먼저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요,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는 그날을 기도와 금식과 성서 읽기로 보냈다. 그는 제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잡된 것을 알아차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간곡히 원했다. 드디어 그는 믿음을, 자기의 의지를 섞지 않고서도 얻게 되었다고 느꼈다. 새벽 일찍 그는 눈을 떠서, 한없는 사랑을 나타내는 빛나는 공처럼 생긴 것을 곡두(환상)로 보았다. 그의 온 몸은 기뻐 떨었다.

 

 

『…….그 때 영안에, 나는 사랑 그 중심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성령임을 알아차렸다……. 사람이, 자신에게 기울지 않고서……. 사랑 그것이면서, 또 복판인 그리스도를 위하여, 공통 선으로 쏠리는 사랑을 얻을 형편이 되면, 그때에는 바른 형편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맨 마지막 목적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리스도에게 바로 이끄는 다리를 놓아 주는 목적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많은 가혹하고도 매운 시달림 끝에, 스베덴보리는 예수가 그를 돕고 싸움에서 이기게 하고, 그 연구의 목적이 이룩된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제가 내 것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나의 모든 삶을 당신 것으로 삼으시고, 나를 굳세게 하시고, 나를 떠 바치는 당신의 성령을 내게서 걷어 가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저를 지키는 천사가 제게 딸린 것을, 또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재주와 힘을 주셨는데, 만일 제가 그 바른 길 아닌 딴 길을 간다면, 저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쾌락 쌓은 재물과 자리(지위), 그것들은 모두 헛된 것임을 알아 차렸다.

 

 

이 동안 스베덴보리는 오란다. 에서 「동물계」를 내는데 종사하였고, 그 처음 두 권은 벌써 출판되었다. 1744년 [56세]의 봄에, 그는 꿈에 배를 보았는데, 그것은 그에게 영국에서 그 책 쓰는 것을 이어가야한다는 표가 되어서, 그는 셋째 권을 거기에서 내려고 하였다. 그는 5월 13일 (월요일)에 암스테르담을 떠나 영국으로 항하였고, 5월 15일에 할윗치에 닿았다. 그날을 영국 달력으로는 5월 4일이었다.

 

 

거기에 도착한 날 밤에 그는 구리판에 무언가 매우 아름다운 도안(디자인)을 그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일은 그가 얼마 가지 않아서 무언가 아주 아름다운 것을 낳을 것이라는 것을 뜻하였다―그것은 다음에 집필할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을 미리 나타내는 것이었다.

 

 

다른 한 꿈은, 정성스러운 구둣방의 일을 말하고 있다.『그 구둣방은 여행하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었는데, 나는 그때 그 사람 집에 들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여행하면서 만난 「정성스러운 구둣방」은, 모라비아 패인 졸 세니푸인데, 오란다 에 있는 그 아이들을 찾아보고서,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스베덴보리는 그를 보고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가족을 내세워 줄 것을 구하였다. 세니푸는 런던에 있는 독일 사람의 모임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먼저 그를 제집으로 데려갔다가, 나중에 프리트 거리에 사는, 금시계를 조각하는 기술자인 존 파울 브록크마에게 소개하였다.

 

 

스베덴보리는 나를 뒤에 브록크마가 사는 집에 들렀다. 브록크마도 모라비아패 사람이었으며, 그 모라비아 형제단이 이 집에서 모였다. 한 때 스베덴보리는 이 사람들을 따라서 풰타 레인에 있는 모라비아 패가 모이는 예배당에 갔지만 그 단체에는 들지 않았다. 그는 스웨덴 사람의 교회에 참석했으며, 거기에서 성찬에 참여 하였고, 헌금도 하였다.

 

 

7월에 그는 브록크마의 집을 떠났는데, 그 한 까닭은 브록크마와 그 하녀가 그의 연구를 방해하고, 그 서류에 참견하였기 때문이다.

 

 

**********************

 

스베덴보리는 바야흐로 「동물계」의 셋째 권에 달려 붙어서, 「감각」을 다루고 있었는데, 다른 생각의 길이 열리고, 새 계획이 그의 마음에 틀 잡히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는, 크고도 아름다운 궁전을 보았으며, 그는 거기에 살면서 가까이에 있는 불쌍한 무화과나무 숲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을 언제나 바라볼 수 있으면 하고 바랐다.

 

 

『창문이 하나, 그 한 날개벽 저 멀리 아래쪽에 열려 있어서 나는 거기가 내 방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 궁전은 내가 계획한 책을 뜻하는 거겠지.』(6월 15일 - 16일).

 

 

어느 때, 잠과 눈을 뜬 가온상태(중간상태)에서, 그는 『거룩한 떨림』에 휩싸여서, 다시금 곡두(환영)가운데서 한사람을 보았다. 『그것은 거룩한 천사이리라』고 맺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던져졌으며, 얼굴은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 바깥의 감각에서 떨어져 나간 안쪽의 감각으로써』그것을 알아 차렸다고 말한다. 그 뒤에 그러한 안쪽인 지각이 오랫동안 잇달아 일어났으며, 점점 더 분명하게, 또 이어져서 행하였다.

 

 

9월 21일에, 그는 비로소 어떤 영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스베덴보리가 자기가 쓸 책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뜻밖에 『입을 다물어라, 그렇지 않으면 칠테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그는 무서웠지만, 그는 그것을 연구에 더구나 일요일과 저녁에는 너무 늦도록 파묻히지 말라는 주의 경고로 생각했다.

 

그는 실지로 고단함을 모르는 집필 가였다. 그는 한 달반도 안 걸려서 보고(눈), 듣고(귀), 맡고(코), 맛보고(혀), 만져보는(살갗),「5관」을 다룬 초벌원고를 휘리오판*으로 하여서, 2000쪽을 완전히 고쳐 쓴 것이다. 이런 놀라운 저술기록은 다만 그의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깨끗하였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세상에 마음을 쓰는 것이나 근심되는 일에도 망설이지 않고, 길게, 깊게,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달림(시련)은 정신과 영 쪽에서 생겼다. 일보는 데는, 그는 깊고 무거웠으며, 사회의 삶은 조심스러웠으며, 때때로 무언가 즐거운 마음의 휴식에도 참가하였다.

 

 

그는 엄청난 책을 써나가는 사이에 하늘나라의 빛깔과 맛이 좋은 술(넥타)을 마시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그 책에 대한 도움이 더 높은 근원에서 비롯되고 하나님께서 그를 오직 그릇으로만 쓰려고 하신다는 표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신 뜻을 다하기 위한 그릇 같은 것이다…….내가 용을 죽이는 연장이 될 수 있다면, 하고 바라고 있다!**(「꿈일기」83쪽)

 

 

시련은 아직도 그를 덮쳐왔다. 달콤한 말에 부추김을 받아서, 그는 그 책을 자랑했다. “아무도 나를 돕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뿐!” 하며, 그는 희망이 없는 중에서도 외치고, 당장이라도 굉장히 큰 검은 빛깔을 한 황소에게 푹 찔리는 꿈을 꾸고 있다. “안전하니 걱정 말아라!” 는 말을 들었다. 그는 더듬감각(촉각)을 다룬 첫째 장을 다 쓰자, 무언가 그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훠리오판. 둘꺾음판, 보통 종류의 책에서 가장 큰 것인데, 보통 30센티 이상의 높이.

** 『 용』은 요한 계시록에 적힌 용을 말한다. 사람은 다만 믿음만으로 구원 받아서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오직 믿음만으로(唯信設)』를 받들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가리킴.

 

 

그 미리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바로 뒤에, 앞서 꿈에 본 아름다운 궁전 박공널* 한 복판에 해가 번뜩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사회의 한 사람이 되기로 결정되었다. *박공널 : 맞배지붕(지붕옆면이 [人]자모양에 손모은꼴로 붙인 두꺼운 널(박공판)[옮긴이 주]

 

 

그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고서는, 누구하나 지금까지 거기에 들게 된 이가 없는 것이다.』

새로운 책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제목은 꿈에 그에게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책」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그는 환상 가운데서 그것은 다른 책하고는 완전히 다른 것이고, 또 완전히 다른 사랑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서, 단순한 이야기나 노리개로 밖에 인정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는 그것을 내버릴 생각까지 하였다.

 

그랬으나 그것을 이어가고자 하는 힘을 받았다(10월 6-7일).

「꿈일기」는 1745년 [57세] 5월에 조금씩 적어 놓은 것을 뺀다면, 1744년 [56세]10월에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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