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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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영혼의 탐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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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탐구

 

「동물계의 얼개」제 1권은 피와 염통을, 제 2권은 머릿골과 사람의 영혼을 다루었다. 스베덴보리는 이 주제의 연구를 먼저 해부학에서부터 말하고 있지만, 그 첫머리부터, 나는 영혼을 탐구하며, 영혼은『피의 맨 안쪽에 있는 생명』이며, 그것은 머릿골 가운데 깃들어 있다고 하였다.

 

 

이 책의 내용을 몇 마디 말로 적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베덴보리는 경험과 관찰이라는 안전한 길에서 멀리 떨어져서, 과학의 통상 분야를 훨씬 뛰어넘어, 직각적 사고의 울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같은 시대의 학자들을 뒤로하고, 그의 마음을 현대의 식역*[識閾(threshold of consciousness)]으로 뛰어들게 하였다.

 

 

*심리학에서 쓰이는, 어떤 의식작용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경계

 

자극으로 의식이 각성되어, 감각을 일으키는 그 경계.[엣센스 국어사전 민중서림판 (옮긴이 주)]

 

 

아마도 이일이, 그가 동물학 발전에 아무런 뚜렷한 힘(영향)을 주지 못한 까닭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 큰 책이 도서실 책장에서 끄집어내져서 먼지를 털었을 때, 사색적인 이론가는 때에 따라서는 정밀과학의 울안에도, 매우 헌신적인 실험가와 같이, 깊숙이 들어갈 수 있음이 분명해 진다. 뛰어난 스웨덴의 머릿골 전문가인 구스타프렛지우스(Gustaf Retzius) 교수는 스베덴보리를 가리켜서, 학식이 많은 해부학자만이 아니라, 날카롭고, 깊은 해부학의 사색가라고 적고,*빈의 막스 노이부르거 교수는, 이 현대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책장마다 가득 쳐 넣은, 현대과학을 앞서고 있는 빛나는 업적과, 그것 말고도 탄복하고, 웁살라의 마르틴 람스토림 교수는 스베덴보리가 어떻게 오늘날에도 높은 기술에 의하여 확인되는 그 독창적인 결론에 이르렀는가를 밝히려고 힘을 썼다.

 

 

스베덴보리는 재료를 정리하자, 그 병리학의 사실을 해부학의 관찰과 맞붙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생명이 없는 자연을 철저하게 익히 알고, 우주의 얼거리(기구)를 깊고도 멀게 살핀 데 있었다.

 

 

*구스타프 렛지우스 교수는 1903년 5월에, 하이델베르그에서 열린 국제해부학협회 총재로서 한 강연에서, 스베덴보리는 머릿골을 다룬 책에서, 현대 해부학자보다도 한 세기나 더 앞섰다고 말하여서, 거기 자리한 백 명이 넘는 유럽의 지도적 해부학자 사이에 센세이션(선풍)을 일게 한 일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트로부릿지 지음 「스베덴보리」일본말판(정사사)241~242쪽.]

 

 

피의 성질에 관한 다음 기사는, 그 한 보기이다.

 

『나는 이제부터 동물계를, 그 얼개를 해부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살펴보려고 하는바, 피는 그 공통의 근원 또 전반적인 원리라고 생각한다.......피는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의 종합체요, 몸에 있는 모든 물질의 광(창고)이요, 모판이다. 거기에는 붙박이인 것 뿐 아니라 휘발성과 모든 종류의 소금기와 또 기름, 알코올, 물 성질(수질)의 요소가 들었다. 요약해 말하면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 이렇게 세 물질계로 창조되고, 생겨난 모든 것이 거의 다 들어 있다. 또 그것은 공기가 그 가슴 속에 모아든 보배를 빨아들이고 있으며, 그 목적을 위하여 허파를 매개체로 하여 그 자신을 공기에 들어내고 있다.』

 

 

그는, 피는 온 세상의 그 세 물질계의 부(富)를 줄인그림(축도)이기 때문에, 모든 물질은 피를 구성하고, 그것을 쉬지 않고 다시 새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창조된 것이 틀림없다고 말을 하였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것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면, 그 때에는 모든 것은 피를 위한 것이니까. 만일에, 거의 모든 내장을 짜 만들고 있는 힘살과 또는 선(腺)의 조직을 아주 잘게 나눈다면, 그것이 피가 들어 있는 기관(器官)과 정신 또는 순수한 피가 들어 있는 올실(섬유)로 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피를 연구하는 데는, 그것이 너무나 깊고도 먼 주제이기 때문에, 해부학, 의학, 화학, 물리학 등,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피오 핏줄과 염통을 조사하는 맨 처음 부분에서는, 처음엔 막연히 억지추측처럼, 생각된다고, 그 스스로 말하는 전반적인 원리와 연역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발표한 것이 참인지 아닌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참된 것이라면, 경험 그것이 스스로 그것을 증명하고 뒷받침 한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경험만으로는 모든 일과 물건의 원인을 아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 해부학, 의학, 화학, 물리학이라는 전반적인 경험에서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한 과학은 다른 과학을 만나서 스스로를 넓히고, 이어서 발견되는 것은, 모두 앞의 것에 새로운 빛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덧붙인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보다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주어져서, 더 뛰어난 밝은 눈(혜안)을 가진 것처럼, 실험적인 관찰을 위해서 태어난 것같이 생각되는 - Eustachius, Ruschy, Leeuwenho다, Lancisi 같은 이들이 그렇다. 또 다른 이들은 이미 발견한 사실을 두고 보고서 그 사실의 원인을 끌어내는, 나면서 타고난 재능을 받아 누리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특별한 선물이고, 한 사람 안에 결함되어 있기란 드문 일이다. 나는 사람 몸의 비밀을 탐구하는 일에 열심이었을 때, 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자기 사랑에 부추김을 받아서, 다른 이들의 극히 예리한 책과 연구에 장님이 되기 시작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해부칼(mes)을 곁에 놓아두고, 관찰하려고 하는 바람을 누르고, 내 스스로의 연구를 믿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연구를 믿자고 마음먹었다.』

 

 

『이러한 능력이나 재능 - 직각적 인식)이라는 특수한 힘 - 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은 과학의 깊은 못이 환히 트이게 되는데 따라서, 차츰차츰 그 사람들의 상상에 기대지 않게 된다.』그들은 실증성이 없는 소견에 서둘러 집착하는 것을,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뱀인 히드라라고 하면서 피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 얻은 학문으로 서두르는 자들은, 어이없는 가설을 발명하여, 붕 떠있는 집으로 무리들을 이끈다. 그들은, 지혜는 기억에 딸린 성질이라 주장하고, 원인에 대한 탐구를 가치가 없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몸의 쾌락과 세상의 근심 때문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그것 때문에 마음은, 천하고, 바깥 것에 끌어내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말은 이쯤하자, 스베덴보리는 이 책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주제에서는 아주 확실한 방법을 따르고 있다. 먼저 그는 아주 뛰어난 해부 학자에게서 모은 경험을 적고, 다음에 이 경험을 연구하고, 거기에서 자기 추리를 끌어내고, 맨 나중에 그 결론을 그 경험에서 확인하고, 『사실에게 사실 스스로를 위하여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피와 『동물정신』에 관한 그의 이론의 상세한 소개는 여기에서는 할 수 없지만, 단지 이 책에서 다룬 피와 넋(영혼)에 관한 설명의 한 끝을 극히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저 한다.

 

 

스베덴보리가 「동물계의 얼개」가운데서 피의 성질과 임무를 그렇게 길게 상세히 논한 이유는, 주로 본질적인 그 생명의 원리가 피 가운데 들어 있다고, 그가 믿었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원리를 그는 『영혼과 바로 걸려 있는 매우 정신적인 물(액체)』로 적고 있다. 피는 『갖가지 성질을 가진 여러 원질의 엉긴 덩어리(응결체)이고, 특히 영혼을 안에 품고, 영혼이 그 생명으로 되어 있는 물의 엉긴 덩이이다.』참으로 이 정신의*물은 영혼 그 자체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만약 이 정신의 물이 몸의 여러 기관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고, 생명을 받아들이는데 아주 오밀조밀(정밀)한 적응성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자신에 의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살아 계신 분, 곧 그가 없이는 자연의 어떤 것도 살 수 없고, 하물며, 현명하여질 수가 없는 우주의 하나님에 의하여 사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이 물」은, 그 몸의 「영」또는 「영혼」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제2부 245).

 

 

* 스베덴보리는, 피에는 세 종류, 곧 「정신적인 물」, 「순수한 피」, 「붉은 피」또는 「 합성 체의 피톨(혈구)」이 있다고 부르짖었다.

 

 

『그것은 두루 통하는 (보편적)힘, 또 원질이고, 또 몸의 넋(영혼)인데, 「붉은 피」는 공통의 원질이고 또는 형제적인 넋이다.』(같은 책 205).

 

 

『이것은 물질적인 소견으로 보이고, 이 동안의 스베덴보리는, 넋(영혼)은 유기적이라는 필연성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물질이 순화된 꼴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의 마음은 아직 넋의 원질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G. 트로부릿지 지음(스베덴보리)일본말판 59쪽]

 

 

『만약 [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넋에서 물질적인 것에 딸린 모든 속성을, 예를 들면, 넓어짐, 꼴, 공간, 크기, 운동을 뺏으면, 우리들은 마음이 그 여러 가지 관념을, 닻에 들러붙듯이 들러붙어 있는 것을 모두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며, 그 결과 마침내 넋9영혼)은 「이념의 존재」와 가려낼 수가 있는가, 아닌가 하는 의혹 속에 모든 사람은 갇히게 된다(제 2부 216).

 

 

다른 곳에서 그는 『우리들이 앞서 말한 물 (액체)을 - 정신적인 물을 - 영이라고 불러도, 아무 거침도 없다. 또는 우리들이 그런 말을, 우주를 그 자신에 대한 상징과 목적을 곧바로 깨닫는 그 물의 능력에 한정해도 아무 거침도 없다. 왜냐하면, 그 한쪽을 그 다른 쪽이 없이는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그 양쪽을 잘라 내서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제2부 303)

 

 

정신적 물, 또는 생물의 정신은 그 뿌리를 머릿골(두뇌)에서 얻고, 머릿골의 맥박에의 하여 몸의 모든 군데를 밀고 나간다고, 우리는 듣고 있다. 왜냐하면, 스베덴보리는 머릿골은 염통과 같이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머릿골의 운동은 생기를 주는 것이라 부르고, 정신적 물의 활동은 거기에 기대어 있다.』(제1부 229).

 

 

『머릿골이 생기를 줄 때마다, 그 물을 신경실(섬유)과 신경으로 밀어 낸다. 그것은 염통이 줄었다 늘었다 할 때마다, 그 핏줄을 거쳐서 피를 밀어내는 것과 매우 닮았다.』(제1부483).

 

 

************

 

『「사람의 넋」을 다룬 부분은 품새9격조)가 높고, 그 궁리에서는 깊고도 먼, 아주 주목할 만한 연구이다. 왕립의과대학의 총장이었던 스파긴 박사는 그것을「사람이 철학하는 온 분야에서 맞수됨(필적)이 없는 빼낸 작품」이라고 밝히고, S.T코르릿지는 가장 높은 칭찬의 말로 말했다. 그런데도 스베덴보리 스스로는, 그 결론이 흐뭇하지 않았다. 깊이 연구하는 데 따라서 넋(영혼)은 그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활동은, 사람 몸의 모든 운동 안에, 가장 안쪽에, 또 가장 오밀조밀한 데서부터, 볼 수 있는 (가시적) 바깥 행위에 이르기 까지 밝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그가 알게 되는 것을 피하였다.』*

 

 

*G. 트로부릿지 지음「스베덴보리」일본말판 62쪽.

 

 

G. 트로부릿지는, 스베덴보리가 그 책에서 「넋은 물질이 순화된 꼴이다」고 부르짖는다고 비판한 것은 앞의 105쪽에서 보여주었지만, 같은 비판이 1741년 [53세]8월에 나온 「믿을만한 정보(Zuverlassige Nachrichten)」8월호 488~513쪽에 발표되었다.

 

 

이 비평가는 『얼개(구조)』제 2권을 비평하여, 제 1권은, 지은이에게 저 2권을 세상에 내라고, 할 만큼 좋은 평을 얻은 것을 말하여, 스베덴보리를 칭찬하면서도, 그 평론을 다음과 같은 말로 맺고 있다.

 

 

『나는 넋(영혼)에 대하여 지은이에게서 따온 말을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의문이 아마 읽는 이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았을까, 나는 어림짐작한다. 가령 내가 그래도 안다고 대답을 한다면, 참으로 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불멸성에 대하여, 또 그것이 동물의 넋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지은이의 이론은, 거기에 내 보이고 있는 수많은 생각에서 판단하여, 지은이는 합리적인 영혼을 물질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쉽게 추정할 수 있게 짜여 있다. 이 일에는 신학자들이 절대로 뜻을 같이 하지 않을 것이며, 또 나도 그런 까닭으로, 더 지은이의 말을 따옴 하는데 망설이게 되는 것은 정당한 일일 것이다.』

 

 

신학자들이 뜻을 같이 하든 말든 상관없이, 스베덴보리는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 이는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여전히 넋의 탐구를 고집하였다.

 

 

「얼개(구조)」는 널리 읽혀졌기에, 학문세계에 얼마쯤 힘을 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제 1권, 제 2권, 모두 초판이 곧 다 팔려서, 1742년 [54세]에 두 권 모두 다시 찍어내고, 육년 뒤에는 제 3판을 찍어냈다. 「분류쌍서(Bibliotheque Raisonne)」에 적기를 『이 저술은 모든 진리탐구자들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조금은 딱딱한 라틴말 글체를 뺀다면, 이런 흠이 있는 제목에 관한 이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지은이가 끊임없이 찍어내는 연구서가 늘 변함없는 좋은 평으로써 맞이하리라는 것을 나는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 학계는, 만일 모든 지은이가 그것을 똑같이 넉넉하고 푸짐하게 하기를 바란다면, 지금보다 더 번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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