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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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 안에 있는 것에 비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1 2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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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 안에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 사람은 이웃을 위한 인애에 있지 못하고, 더욱이 주님사랑에 있지 못한다

 

자기사랑(자아애)과 세상사랑(세간애)에 관해서 설명한 내용에서 볼 때 명확한 사실은 모든 악들은 그런 사랑들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악들이 그런 사랑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역시 모든 거짓들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주님사랑과 이웃을 향한 이웃사랑(仁愛)으로부터는 모든 선들이 생성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모든 선들이 이런 사랑들에게서 생성되기 때문에 모든 진리들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실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명확한 사실은 사람이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 안에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 사람은 이웃을 위한 인애에 있지 못하고, 더욱이 주님사랑에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들은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역시 명확한 사실은, 사람이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 빠져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 사람은 인애가 무엇인지 모르고, 종국에는 그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까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에 비례하여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종국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른다는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은 양심(良心. conscience)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종국에는 양심이 존재하는 것까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아니, 그 사람은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또한 천계의 생명(=삶)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최종적으로는 천계와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까지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자기사랑이나 세상 사랑이 사람을 지배할 때, 생기는 그런 사랑들의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천계적인 사랑의 선이나, 그것에 속한 믿음의 진리들은 주님으로부터 계속해서 입류(入流)하지만, 그러나 자기사랑이나 세상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영접되지도 않고, 수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사랑이나 세상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는,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랑이 변함없이 생각 안에 존재하고, 목적이 되고, 그리고 의지 안에 있고, 그런 사랑이 삶을 영위하는 곳에는, 주님에게서 입류하는 선이나 진리는 배척되거나, 소멸되고, 그리고 왜곡된다.

 

그것들이 배척당하는 그런 자들에게서 사랑에 속한 선이나, 믿음에 속한 진리들은 경멸(輕蔑)의 상태나, 혐오(嫌惡)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 것들이 소멸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의 선이나, 믿음의 진리는 부인(否認)되고, 반대적인 악들이나 거짓들은 받아들이고, 승인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왜곡되는 자들에게서 사랑의 선이나, 믿음의 진리는 잘못 해석되고, 악이나 그것에 속한 거짓을 선호하고, 유리하도록 적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분별이나 자기통제의 연령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에게 있는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은 지배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는 자기의 고유속성((固有屬性. 自我. own)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런 일은 그 사람의 악의 삶에서 자기 자신을 확증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러한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악들을 전유시키는 것에 비례하여 주님은, 그 사람이 젖먹이 때나, 어린 아이 때, 그리고 그 뒤의 여러 시기에 영접, 수용했던 이노센스의 선(=순진무구의 선)이나 인애의 선을 분리하시고, 그리고 그것들을 그의 내면적인 것들 안에 보관시킨다. 왜냐하면 이노센스의 선(the good of innocence)이나, 인애의 선은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 속한 악들과는 결코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소멸되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들 스스로 사랑의 선이나, 믿음의 진리를 왜곡하거나, 소멸시키고, 또한 배척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들 안에 결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령존재에게서 비롯된 생명은 선을 원하고, 진리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을 원하고 선을 원하지 않는 자들이나, 거짓을 믿고,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은 진정한 생명에 반대되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에 반대되는 이것은 곧 지옥을 가리키고, 그리고 “사망”(=죽음.death)이라고 부르고, 그들은 “시체”(=주검. dead)라고 불립니다. 사랑이나 믿음에 속한 생명을 진정한 생명(life)이나, “영원한 생명”(永生. eternal life)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 안에 이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living men)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리고 이 생명에 반대되는 것을 “죽음”(死亡.death)또는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라고 부른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시체”(=주검)라고 부른다는 것. 등등은 성경의 여러 장절들에서 아주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 4: 16 ; 8:21,22 ; 18:8,9 ; 19:16,17,29 ; 요한 3:15,16,36 ; 5:24.25 ; 6:33,35,47,48,50,51,53,57,58,63 ; 8:21,24,51 ; 10:10 ; 11:25,26 ; 14:6,19; 17:2,3 ; 20:31이나 그 밖의 여러 장절들이 되겠다. 7488-7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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