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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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에 속한 사람은 진리는 배우나 선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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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에 속한 사람은 진리는 배우나 선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

 

 

선에 의한 주님과의 결합은 사람의 중생에 관한 언급에서 이미 자주 언급했지만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 속한 사람은 믿음에 속한 진리들을 열심히 공부하지만, 그러나 사랑에 속한 선은 거의 공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의 사람은 선에 관한 무지의 상태에 있으므로 이른바 천계적인 혼인이라고 하는 선과 진리의 결합에 관해서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사람은 온갖 종류의 악들 가운데 태어난다. 결과적으로 온갖 종류 거짓들 가운데 태어난다. 따라서 그 사람 자신으로 보면 그는 지옥으로 가도록 저주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가 지옥에서 구출되기 위해서 그는 반드시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여 그는 제일 처음에는 반드시 진리들을 배워야 하고, 그리고 만약에 그가 교회에 속해 있다면, 그는 반드시 진리들을 성언에서 배워야 하고, 그리고 성언에서 발췌한 교리로 말미암아 배워야 한다. 성언이나 성언에서 발췌한 교리는 참된 것이 무엇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그리고 진리와 선은 거짓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친다. 만약에 사람이 이런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가 중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악을 선이라고 하고, 거짓을 진리들이라고 하는 자신의 악들이나 거짓들 안에서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진리나 선에 속한 진리들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그리고 반드시 사람은 이해의 빛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해는 선과 진리의 지식들의 의하여 빛을 받기 위하여 사람에게 주어졌기 때문이고, 이런 것들이 의지에 수용되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선이 되게 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것을 원할 때 진리들은 선이 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것들을 원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행할 때 진리들이 선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식으로 사람에게서 선이 형성되는지 잘 알 수 있겠고, 그리고 만약에 사람이 선 안에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이 다시태어나지 못하고, 또한 중생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 수 있겠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지의 측면에서 선 안에 있을 때, 그 때 그 사람은, 이해의 측면에서 이 선에 속한 진리들 안에 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있는 이해는 실제적으로 그의 의지와 한 몸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원하고, 생각한 것은 그 때 그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때 이것이 진리와 선의 결합이라고 하고, 또한 천계적인 혼인이라고 한다. 사람이 선한 것을 원한다고 말하든, 선한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든 그것은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사람이 선에 속한 진리를 이해한다고 말하든,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든, 역시 그것도 동일한 것이다. 이것에서 뒤이어지는 것은, 중생한 사람에게서 사랑과 믿음은 한 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결합, 즉 이 혼인이 교회라고 하고 천계라고 하고, 주님의 나라라고 한다. 아니 최고의 뜻으로는 사람에게 있는 주님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온갖 악들을 애지중지 하는 자들도, 이런 악들을 그들은 유전적으로 수용되고,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에게 형성되었고, 어떤 것은 스스로 부가시키고, 그리고 새롭게 흡수하는 것이지만, 성경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경말씀에서 발췌한 교리로 말미암아 사실은 어느 정도 파악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중생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중생되기 위하여, 주님 의하여 이해의 측면에서 이런 상태에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의 악들을 애지중지 할 때, 그 때 그의 속사람의 이해는 이런 진리들을 흡수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겉사람의 이해가 이런 진리들을 흡수하는데, 이런 이해는 그저 단순한 기억지에 불과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또한 그들은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진리가 무엇인지를 지식으로 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진리들 안에 있기 위하여 교회와 천계를 형성하지만 그러나 삶에 속한 선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시 자신들의 원칙에 지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성경말씀을 설명한다. 여기에서 뒤이어지는 것은 삶의 측면에서 동시에 진리들 안에 있지 않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경우, 거기에는 진리와 선의 결합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저 세상에서 그들이 믿음에 속한 진리라고 부르는 진리들은, 그들에게서 분리 떠나버린다. 왜냐하면 의지에 속한 악들은, 그것들을 쫓아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있었던 곳에는 그들이 처해있는 악들에 일치하는 거짓들이 그 자리를 승계한다.

 

 

이상의 모든 것에서 볼 때 성경에서 “안식일”이 뜻하는 선과 진리의 결합이 무엇이 뜻하는지 장 알 수 있겠다. 이 결합은 “쉼”으로 말미암아 “안식일”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안식”이 “휴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처음의 상태에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사람이 진리에 의하여 선에 인도 될 때, 그 때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있는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을 상대해서 싸우는 싸움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시험이라고 하는 싸움들에 의하여 온갖 악들이나 거짓들은 분리되고, 떨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선과 진리가 결합되기 전 까지는 그것들로부터 휴식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사람은 쉼을 얻고, 주님도 휴식을 취한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은 더 이상 악들이나 거짓들과 대항해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사랑 안에 계신다, 10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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