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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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스웨덴 나라안이 깜짝 놀람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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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나라안이 깜짝 놀람

 

 

1759년[71세] 7월이 끝날 무렵, 그는 본국을 향하여 영국을 떠났는데, 아마도 오란다를 거쳐서, 그 일곱 번째 외국 나들이에서 돌아왔다. 이때까지는 그가 지은이의 이름을 숨길 수 있었으며, 그가 두 세상을 사는 자로, 또렷한 깨달음을 가지면서도, 안팎이 다른 겹친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을, 비록 그것을 아는 이가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조금뿐이었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의 이상한 심령 쪽으로 능력을 증명하는 연출된 사건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의 주의가 그에게로 쏠리는 때가 왔다. 그 처음은, 그가 스톡홀름에서 대강 삼백 마일 떨어진 서쪽 바닷가, 요덴브르이*]Gothe burg] - 지금의 요-데보리 - 항구에 다다랐을 때에 일어났다.

 

 

7월 19일, 토요일 오후 4시, 스베덴보리와 함께, 다른 이름난 열다섯 사람이, 이름 있는 장사꾼인 윌리암 카스텔의 손님으로 카날 거리에 있는, 지금은 『사-그렌 집』으로 알려진 훌륭한 집에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여섯시쯤, 스베덴보리는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얼굴빛이 바뀌어 매우 갈팡질팡하면서 돌아왔다. 인도를 받자, 그는 방금 남쪽 스톡홀름에서, 위험한 불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것이 재빨리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안함과 고요함을 잃고 종종 뜰로 나갔다. 그는 친구의 집이 - 그 친구의 이름도 그는 말했지만 - 벌써 재가 되었고, 내 집도 위험하다고 했다.

 

여덟시에, 그는 밖에서 돌아와 휴 - 하면서 소리쳤다. 『고마워라! 불은 꺼졌습니다. 내 집에서 세 집만 에서!』카스텔씨의 청함을 받은 손님 가운데는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어서, 매우 놀랐다.

 

 

그 저녁에, 그곳 지사에게 전해져서, 일요일 아침 스베덴보리는, 그 지사의 집에 청함을 받고 갔는데, 그 지실(재해)에 대하여 물어왔다. 그는 불난 일에 대하여 자세히 또 그것이 어째서 일어났는지, 얼마동안 이어졌는지, 어떻게 되어 꺼졌는지를 말했다. 그 소식은 그 거리에 퍼져서 대단한 놀라움을 일으켜, 사람들은 친구의 안부와 그 불 때문에 잃게 된 많은 재산을 염려했다.

 

 

일요일 저녁, 스톡홀름에서 한 심부름꾼이 왔다. 그는 불길이 아직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 통상국에서 보내왔다. 그가 가지고 온 편지에는, 큰 불이 스베덴보리가 이틀 전에 말한 대로 퍼진 것이 적혀 있었다. 화요일에, 왕이 급히 보낸 심부름꾼이, 불이 난 슬픈 소식을 가지고 지사 집에 다다라서, 널리 입은 손해와 재산이 타버린 것을 알렸다. 이 불이 난 데 대한 두 번째 보고도 처음 것과 같이, 스베덴보리가 불길이 퍼지고 있는 그 때에, 그 일을 말한 것하고, 그 아주 잘디잔 데 까지도 틀리지 않았다.

 

 

이 사흘이 지나서, 대학의 교수인 요한 로센이 엮은, 요덴브르이 신문은 다음과 같이 알렸다. 『스톡홀름 발, 이달 열 아흐렛날, 운이 없는 불이 세데르마룸에 일어났다. 나무로 지은 집에서, 빵 굽는 불을 너무 세게 해서, 거기에서 오후 세 시에 불이 나서, 온 스킨나르브켄, 호른스가탄, 마리아가탄, 세데르 마룸 장터, 전체로 퍼졌다. 훌륭한 집과 재산이 재가 되고, 마리아 교회도 타서 내려앉았다. 바람은 서북서로 매우 셌다.』이 기사에는 말할 것 없이, 저 이상한 뚫어 봄(투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이 이상한 뚫어봄과, 미리알림(예고)은, 요덴부르이 사람들에게서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이 뚫어본 일이, 서울인 스톡홀름에 전해졌을 때, 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그 뚫어봄은 사람들 마음속에, 그가 겪은 영의 경험에 끌어 붙일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는 누구에게도 영계에서 경험한 것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그가 「하늘나라의 비밀」을 지은이인 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그 책에 쓴 놀라운 선언이, 감사관 스베덴보리의 것이라고 나타내는 기록된 증명은, 아무것도 없다.

 

 

「하늘나라와 지옥」의 책 한권이, 그 겨울동안에 스톡홀름으로 들어온 것이, 스베덴보리의 한 친구, 구스타흐 본데가 몸소 적은 종이 한 장에서 증명된다.

 

거기에는 1759년 [71세] 1월 5일 날짜가 적혀 있다. 본데는 스베덴보리가 런던에서 나온 다섯 권의 논문을 지은이라고 짐작했다. 혹은 어떤 방법으로 찾아낸 맨 처음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스베덴보리는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지은 신학 책에 이름을 밝혔다.

 

스베덴보리는 본데 백작을 잘 알고 있었다. 임마누엘이 그에게 「여러 가지 관찰」의 맨 처음 3부를 드렸을 때에, 그는 광산국 총재이었다.

 

 

본데 백작은 「하늘나라와 지옥」에서 말하는바와 모두 찬성하지 않았지만 스베덴보리가 지은 많은 책에서 깊이 느끼고, 그것에 관하여 롯델 담에 있는 문헌 방면의 한 친구, 핫첼 남작에게 써 보냈다. 핫첼은 금세 「비밀」을 품은, 그가 지은책의 열렬한 단골독자가 되고, 때를 놓치지 않고, 스베덴보리와 만나고 싶은 뜨거운 소원을 본데 백작에게 써서 보냈다. 그는 그에게, 공책 한권을 그 감사관에 부쳐 주기를 부탁하고, 거기에, 저는 젊어서부터 진리를 찾고 있었는데, 이제야 스베덴보리님의 이상한 안쪽과 총명하고 재빠른 가르침을 대하고, 당신의 제자가 되어서 당신을 따르고, 당신이 마시고 있는 『같은 지혜의 물을 맛보았으면』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고 적었다. 또 그것을 갚는 뜻으로, 나는 당신이 지은 모든 책을 독일 말과 프랑스말로 옮겨서, 교육이 없는 자들에게도 읽히고 싶습니다, 고 더 써넣었다.

 

 

스베덴보리는, 내 책은 이름을 숨겨 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구와도 편지를 주고받을 수가 없습니다, 고 점잖게 본데에게 설명하고, 내가 기뻐한다고 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것은 남작이 하늘나라에서 오는 빛을 받고 있다는 표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다루고 있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오는 빛을 받지 않고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데가 로텔담의 친구에게 보낸 대답이, 그의 소원을 채워 주었는지, 어떠한지는, 적은 것이 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알길 이 없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온 거리는, 스베덴보리가 지닌 놀라운 뚫어보는 능력에 대하여, 말하게 되었다.

 

그가 학문이 넓고, 적는 일을 맡은 안톤 본 쉘만 에게 말한 적은 있지만, 이성과 지혜가 있고, 현명한 자들에게만 그의 책을 드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쉘만도 끼어 있고, 이 사람에게 과학책은 특히 그의 「화학」을 바쳤다. 안델스 폰 헤프켄 백작에게는 스완멜담의 「자연의 성서[Biblia Naturae]」를 드렸다. 현명한 자들 사이에는 감독이 두 사람 있었으며, 그 두 사람에게 「하늘나라의 비밀」을 드렸다.

 

 

스베덴보리가 이상한 주장을 하는데 에, 알고 싶기가 일어난 잘난 사람 중의 한 사람은 한때, 수상을 지낸 구스타흐 텟싱이며, 그의 「일기」는, 같은 시대의 사람과, 일어난 일에 관한 숨은 이야기가 넉넉한 보물 광이 되어 있다. 그것은 세델만 랜드의 메렐 호숫가에 있는 텟싱의 아름다운 아케레 성 안에, 훠리 판 29권으로 간직되어 있다. 1760년[72세] 2월 28일, 텟싱은 몹시 서둘러, 다음과 같은 마음에 남은 느낌(인상)을 써 두었다.

 

 

『그는 뜰에 있는 온실에 살며, 저 스스로를 사람가운데서 가장 운 좋은 이(행운자)라고 생각하였고, 사실 또 그런 사람이라고들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앞날의 세계와 친하게 사귀는 것으로, 죽은 모든 사람들, 그가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또 그들과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그로부터 이 사흘 지나서, 그는 다시 더 써 넣었다. 『통상 참여관』포르헴을 장사할 때, 스베덴보리는 그 장례식에 나아가서, 포르헴이 제게 가까이 와서 함께 걸으면서,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하고 묻기에, 나는 당신의 장례식입니다, 고 하였다.

 

 

다시 텟싱은 쓰고 있다. 『단순히, 기묘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알고 싶기로, 나는 1760년[72세] 3월 5일 오후에, 감사관 스베덴보리를 만나러 갔다. 그는 호른스가탄의 먼 쪽에 있는 넓은 땅에 정원이 딸린, 아름답고 작은 나무로 지은 집에 살고 있다. 나는 거기에서, 얼굴 생김은 돌아간 스베드베리 감독의 얼굴과 꼭 닮았으나, 그처럼 키는 크지 않은, 한 늙으신 노인네를 보았다. 그 눈은 가냘프고, 입은 크고, 얼굴빛은 좋지는 않았지만, 건강하고, 마음을 터놓고 잘 이야기 하였다. 나를 기뻐 맞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하늘나라와 지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저승에 가자마자, 반드시 추밀원의원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고 내게 잘라 말하기(확언) 때문에, 나는 그건 고맙군요. 하지만 나는 벌써 이 세상에서 그런 일에 물렸습니다, 고 딱 잘라 말했다.』

 

 

스베덴보리를 대하는 텟싱의 관심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겨울 동안에 토요일모임에 나와 달라는 청함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개인의 흥미 때문이며, 헤프켄의 경우같이 스베덴보리의 이론에 하소연 하는 신학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알고 싶기에서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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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스톡홀름에 새로운 이목 끌기(Sensation)를 일으킨 큰 일이 일어났다.

스톡홀름에 머물러 있던 오란다 대사 마르테뷰 씨(Monsieur de Marteville))는 작년 4월에 죽었다. 대강 한 해가 지나서, 한 금공이 마르테뷰의 남은이(미망인)에게, 그가 남편에게 판 은 세공품 값 청구서를 내 놓았다. 남은 이는, 남편은 돈을 주고받는 데는 꼼꼼한 성질이었기 때문에, 그 청구에 놀랐다. 그 여자는 2만5천 길다나 되는 돈은 이미 갚았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영수증이 보이지 않았다.

 

죽은 남편의 한 친구인 러시아 대사 오스테르만 백작이 그 여자에게, 스베덴보리에게 부탁해 보면, 하는 제안을 했다고 믿어지는 점이 있다. 그 여자는 부인 몇 사람에게, 가까이 살고 있는 기묘하고 놀라운 분과 친하게 사귀고 싶다는 바람을 입 밖에 냈다. 그래서 그들은 날을 정하여, 함께 그 분을 찾아뵙기로 했다.

 

감사관은 위쪽에 있는 온실에, 햇빛이 잘 드는 천정이 높은, 훌륭한 방이라고 적혀있는 곳에, 젊잖게 그들을 모셨다. 나중에 그는, 그들을 정원으로 안내하였다.

 

 

마르테뷰 부인이, 당신은 돌아간 내 남편 마르테뷰를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는 아니요 하고 말했다. 성가시게 해서 미안합니다마는 하고 사과하고 나서, 그 여자는 부탁하는 말을 하였다. 여러 사람이 말하는 대로, 만일 당신이 죽은 사람들과 말할 수 있는 이상한 선물을 가지셨다면, 그 은세공품의 일을 남편에게 물어보아 줄 수는 없겠습니까. 스베덴보리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스베덴보리는 그 일을 로프삼에게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그 부인이 내게 잃어버린 그 영수증을 말할 때, 나는 만일, 내가 마르테뷰 씨를 만나게 되면, 그 일을 그에게 물어보지요 하고 약속했습니다, 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이 사흘 후에, 그는 영들의 세계에서 그 대사를 만나서 그 일을 물었다. 마르테뷰는 『제가 그 밤에 집에 가서 찾아보지요, 하고 스베덴보리께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에게 알릴 대답은 하나도 받지 못하였습니다』고 스베덴보리는 덧붙였다.

 

 

마르테뷰 부인에 의하면, 그 여자가 스베덴보리를 찾아뵌 지 여드레가 되어서, 돌아간 남편이 꿈에서 그 여자에게 나타나, 영국제인 뷰어로우 - 뺄 함이 달린 큰 책상 - 안에, 그 영수증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다른 기사에서 그 여자는 , 남편의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응, 당신, 당신은 영수증 때문에 걱정하는구려, 책상 뺄함을 쭉 빼어 보구려. 당신이 그것을 빼낼 때, 아마 그 영수증은 뺄함 뒤로 밀러난 것 같군요.』

 

이 꿈은 새벽 두 시쯤에 일어났다. 남은 이는 너무나 기뻐서 일어나, 그 가리킨 곳에서 영수증 말고도, 다이아몬드 몇 개로 꾸며진 머리핀을 - 그것은 잃은 줄로 생각했는데, 그 머리핀도 찾아냈다. 그러고 나서, 잠자리로 돌아와서 아침 아홉시까지 잤다.

 

 

열한 시에, 스베덴보리는 그 집에 가서 안내를 구했다. 그가 부인에게서 한 마디도 듣기 전에, 나는 어젯밤, 여러 영들을 만났는데, 거기에는 마르테뷰님도 있었습니다, 고 말했다.

 

나는 대사와 말하고 싶다고 했는데, 대사는, 저는 아내에게 가서 중요한 일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하며 거절을 당했습니다. 또 대사는 그 뒤에, 저는 1년 동안이나 살던 이곳을 떠나서 더 복 받을 곳에 갑니다, 라고도 말했다.

 

이 「잃어버린 영수증」이 일어나서 4년 뒤, 그 일에 대해서 더욱 연극 같은 이야기가 임마누엘 칸트에게서 들려왔다. 칸트는, 스베덴보리가 찾아온 이들 앞에서, 마르테뷰 부인에게, 비밀의 뺄 함이 있는 올바른 곳을 말하고, 모두 다 일어나서 그 부인을 따라 2층에 있는 방에 가, 거기에서 모두가 죄다 몹시 놀란데 는, 그 영수증이 숨은 칸막이에서 나타났다고 말해 밝히고 있다. 앞서 로프삼이 간결하게 한 말은, 스베덴보리가 『나는 그 일을 드러내는데, 더 한 일이 없습니다.』고 잘라 말해서, 그에게 말한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 타펠 박사가 편찬한 「문서」둘째 권 635-6, 이 『잃어버린 영수증』을 찾게 된 지남(경과)에 대해서는, 임마누엘 칸트가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쓰여 있는 것하고는 좀 다르다. 칸트가 자세하게 적은 일에 대해서는 , 트로브릿지 지음, 「스베덴보리」[靜思)199-20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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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가을에 일어난 여왕의 비밀에 관한 일은, 잃어버린 영수증 이야기보다 더 중요하다. 이 이야기도 앞서 이야기처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들은 그 일이 있은 지사를 밖에 안 되어서, 텟싱 백작이 그 「일기」에 적은 것을 가장 믿을 수 있다고 여겨서 뽑기로 하였다.

 

덴마크의 한 관리가 간단히 적은 일이, 그 중요한 일이 일어나기 전의 형편을 좀 밝히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것을 소개하기로 한다.

 

 

스베덴보리는 1761년[73세] 10월도 다 끝나가는 어느 날, 울릭 셰파 백작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백작은 그에게, 당신은 나와 함께 내일 대궐 안에 갈수가 없을까요, 하고 청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셰파 백작은 제가 대궐 안에 가는 것보다, 다른 일로 바쁜 것을 넉넉히 알고 있는데, 왜 그와 같은 것을 말하는가, 고 물었다.

 

 

셰파는 대답하기를, 사실은 여왕의 자매인 브른스윅 공작부인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내가, 「고틴겐 신문(Gottingen Gazette)」에 스톡홀름에 있는 죽은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말이 실려 있는데도, 여왕께서 지금까지, 그 몇 통의 편지에는 한 번도 그 일을 말하지 않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왕은 마침,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이 정말 있습니까, 그 사람은 미친것이 아닙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엣P파 백작은, 그 사람은 미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려내는 마음(분별심)도 있고, 거기에다 학문도 있는 사람입니다, 고 대답했던바, 로뷔사 울리카 여왕은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스베덴보리는 그와 함께 대궐 안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왕과 왕비는 도착하여 외국 대사들과 말을 나누다가 셰파 백작에게 다가왔으며, 그는 스베덴보리를 소개하였다.

 

『왕비는 그를 보고 흐뭇함을 나타내며, 「당신은 죽은 사람들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말입니까」고 물었다. 「참말입니다.」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여왕은 다시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여지고, 또 다른 사람에게서도 전하여 오는 과학입니까」고 물었다. 「아니오.」.「그러면 그것은 무엇입니까」.「주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그렇다면 당신은 죽은 아무와도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 하고만」.그는 대답했다.「나는 아무와도 말을 못합니다. 다만 세상에서 내가 알았던 사람들과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개인으로 알고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 행실이든가, 문서로 알고 있는 왕이나 모든 왕자분, 이름난 영웅, 또는 훌륭한 학문이 있는 사람들과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그 사람들에 대한 얼마간의 생각을 품을 수 있는 모든 사람하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결코 알지도 못하고, 또 그분에 대하여 아무 생각을 품을 수 없는 분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고, 또 말하기도 싫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그래서 여왕은 그에게 물었다.「당신은 요즈음 죽은 내 형제에게 내 생각을 전하여 줄 수가 있습니까.」. (그 형제란, 1758년 [70세] 6월 12일에 죽은 푸로시아의 오가스타스 윌리암이다). 그는 대답했다.「기쁘게 맡겠습니다.」거기에서 그는 왕과 셰파 백작과 함께 걸어서, 여왕의 뒤에서 창문가로 갔다. 거기에서 여왕은 그에게 전하여 줄 말을 주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회답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고 약속을 하였다.』

 

 

11월 18일, 텟싱은 다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사흘 전 - 그것은 지난주의 일요일 이었다 - 스베덴보리는 다시 대궐 안에 들어가서, 그 여러 가지 책을 손수 전하면서 여왕 뵙기를 청하였다.』여왕자신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스베덴보리가 들어올 때에, 화투를 치고 있었는데, 저분은 단 둘이서 말하고 싶다, 고 하였습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여럿이 있는데서 말하면, 하고 대답했는데, 저 사람은,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은 여럿이 있는데서 는 말할 수 없습니다, 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여왕은 가슴 설레며 화투장을 다른 부인에게 주고, 슈베린 원로원 의원을 나들문(출입구)에 두고, 스베덴보리와 그 방 다른 쪽 끝으로 걸어갔다.

 

 

『그때, 그는 여왕에게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숨겨야 할 것을 남모르게 살며시 이야기 했다.』고 텟싱은 말한다. 여왕은 그 말을 듣고서 낯이 하얗게 질려서 금세 정신을 잃은 것 같이 두세 걸음 뒷걸음치더니, 곧이어 상기된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것은 우리 형제 말고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스베덴보리는 여왕이 몹시도 놀라는 것을 보고, 지나친 일을 용서해 주기를 빌었다.

 

 

『그는 방을 나가자, 기다림 방에서 다린 참여를 만나, 제가 그 일을 더 알아보면, 그것으로 여왕께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고 여왕에게 말씀드려 주기를 바란다, 고 참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열흘 또는 열이틀이 지나기 전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나(텟싱 백작)에게 말을 덧붙였다. 「만일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여왕의 마음에 꼭 같은 찔림을, 아마 더 심한 찔림을 주게 될 테니까.」』

 

 

스베덴보리와 여왕 사이에 일어난 비밀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누구나 알고 싶은 일이었다. 그 일이 있고서 며칠 동안이나, 마차 몇 대가 감사관의 나들문 앞에서 멎고, 거기에서 왕국의 일급 신사들이 내려서, 여왕을 그처럼 떨게 했던 비밀을 알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흘리는 것을 굳게 물리쳤다. 달리 이 일을 적은데 는, 스베덴보리는 여왕이 샬롯텐부르이 성에서 지금은 죽고 없는 형제와 헤어지면서 한 말을 그대로 말했다고, 말하고 있다.

 

 

스베덴보리가 그 비밀을 흘린다면, 그것은 중대한 드러냄(폭로)이 되어서, 스웨덴 여왕이 싸움을 하고 있을 때에 원수나라에 몰래 알려주었다는 나무람을 끼치게 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스웨덴은 푸로시아와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두세 해 전에, 울리카 여왕은, 왕권을 넓히려고 혁명을 꾀하였다는 나무람을 벗어난 때이었다.

 

 

스베덴보리는 좀처럼 교회에 가지 않았다. 그는 그 생각과 맞질리는(모순되는)설교에서 배울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또 그는 그다지 주님의 성찬에 끼지도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1760년[72세], 국회에 출석한 가까운 한 감독에게서 따뜻한 충고를 받았다. 그는, 제 경우는 주님에게 특별히 할 일을 받고, 끊임없이 천사들과 사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종교의 일은 다른 사람의 경우와 같이 볼 수는 없다고 대답은 했으나, 그 감독이, 당신이 예전(禮典)에 출석하는 것으로 좋은 본을 보여줄 수 있다는 충고를 듣고, 작년에 불이 난 뒤에, 마리아 교회 무리들을 위하여 잠시 정하여 마련된 교회의 제단 앞에서, 예전에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거기에 있는 교회직분을 가진 이들을 특히 잘 몰랐기 때문에, 그 교회에 나가기 이삼일 전에, 어느 목사에게 가는 것이 좋은 지를 부리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손위의 목사 이름을 댔다.

 

 

『안됩니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그 사람은 감정이 세차고 바탕이 거친 사제입니다. 나는 그가 강단에서 큰 소리로 외쳐대는 것을 듣고 마음이 즐겁거나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 교회 구역에서 그 사제만치 인기가 없는 도움사제의 이름을 드니,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바라는 분입니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그대로 말하며, 그래서 인기를 잃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생각한 그대로를 말해서 인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입니다.』

 

 

스톡홀름에 있는 왕립도서관이 맡아둔 크라스 에케브라드 백작이 쓴 「1762년[74세]의 일기」124쪽에는, 6월 16일 수요일 날짜로, 그가 왕의 동산놀이에 나아갔을 때, 스베덴보리가 러시아 여황(女皇)이 그의 증조부(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하늘나라의 즐거운 동산에서 혼인한 것을 말했기에, 『그 일을 값지게 여겨서 써둔다』고 적었다. 에케브라드 백작 어머니의 증조부 마그느스 라 가르데 는 21년 전에 젊어서 죽었고, 피-터 큰 황제의 딸이며, 러시아 여황인 엘리자베스는 지난해[1761년] 1월에 쉰 세 살에 죽었다. 스베덴보리는 그의 「영계일기」에, 데 라 가르데 와 러시아 여황이 영들의 세계에서 만나, 서로 끌리어서, 드디어 혼인예식을 올리게 된 것을 적고 있다.

 

 

데 라 가르데 는 저승에서, 앞서 아내하고는 서로 마음이 닮지 않아서 헤어졌다. 여황은 이 세상에서 그에게 혼인을 청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데 라 가르데를 만나자, 둘은 금세 저들이 서로 맺어질 사이인 것을 깨달았다. 엘리자베스는 러시아 사람의 가장 좋은 사회를 마음대로 부리는 자이고, 데 라 가르데도 영계에서 큰 사회를 다스리고 있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한다. 그들이 혼인하겠다고 마음을 정하자, 흰옷 입은 한 천사가 간단한 예식을 주관하기 위한 사람으로 보냄을 받았다. 그는 단지 두 사람에게 혼인에 뜻이 같은 지, 아닌 지를 묻고서, 두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을 빌었다. 이 일은 1762년[74세] 3월 5일, 곧 스베덴보리가 동산 놀이에서 데 라 가르데의 손자를 만난, 석 달 전에 일어났다.*

 

 

* 영계에서 하는 혼인은, 이 세상에서 하는 혼인과 뿌리부터 틀린다.

이 세상에서 혼인은 「속사람」이 어떠한 지를 전혀 모르는 채로, 「겉사람」에 의하여 정해지고, 행하여진다. 그래서 혼인한 뒤에, 서로의 「속사람」이 벌거벗은 대로 나타나고, 그것이 하나가 안 되면 「겉사람」은 아무리 맞붙어 있어도, 이 세상에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저승에서는 반드시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저승의 혼인은 「속사람」이 하는 것이다. 저승에서는 「속사람」과「겉사람」이 완전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서로에게 끌어 당겨지는 것이요, 이렇게 맺은 자들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다.

 

 

역사는, 엘리자베스 여황은 일에 대한 참과 거짓을 값매김하는 능력이 날카롭고, 외교하는 솜씨와 아버지 피-터 큰 황제에게서 물려받은 정치하는 재능이 많았다고 값매김 한다. 『그 여자가 어물거리기만 하고 딱 잘라서 결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을 값매김 하는 데, 현명하게도 성급하게 내리지 않으려는 데서 온 경우가 아주 많다.』이 일은 스베덴보리가 다음 두 가지 경우를 말한 것을 생각하면 더 재미가 있다.

 

 

그 하나는, 그의 친구 카르르 로프삼이 적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스베덴보리를 오로노스꼬으라고 하는 러시아 수도사와 함께 먹는 데에 청하였다. 러시아 사람은 스톡홀름에 있는 제국공사관에 딸린 교화사(敎化師)이었다.

이 경건하고 믿음이 깊은 수도사는 로프삼과 친하여져서 그에게서 스베덴보리가 지은 책 몇 권을 빌려 그것을 매우 기쁘게 읽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을 먹는 것은 오로노스꼬으를 유별난 학자와 마주하게 하려고 베푼 것이었다.

그 러시아 교화사는, 당신은 엘리자베스 여황을 만나셨습니까, 고 물었다. 『여러 번이나 만나고 있습니다. 나는 여황께서 매우 복된 형편에 계시는 것을 압니다,』고 스베덴보리는 대답하였다. 그것을 자리를 함께 한 이가 프랑스말로 옮겼다. 그 말에 교화사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빛났다. 여황님은 언제나 착하고 어질며 바른 분이십니다, 고 그는 말하였다.

 

『그렇지요,』하고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여황이 그 백성들에게 부드러운 마음 씀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 그가 죽은 뒤에 밝혀졌습니다. 여황은 모여서 의논하는데 나아가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빌어, 나라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하나님의 마음과 도우심을 구한 것이 저승에서 밝혀졌습니다.』

 

그 교화사는 입을 다물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기뻐하면서도 놀랐다.

 

그 뒤에 몇 해가 지나서 스베덴보리가 덴마크에 있는 스웨덴 영사의집에 청함을 받아서, 영계에 있는 엘리자베스 여황의 형편을 말한 것이 글로 적어서 남아 있다. 당신은 덴마크에서 요즈음 돌아가신 후레데릭 왕도 만났습니까. 하는 물음에 스베덴보리는 대답했다.

『네, 나는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매우 행복합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올덴브르이 집의 왕들도 다 행복하며 그들은 모두 함께 맺어져 있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왕들은 그렇지가 못하고, 그 가운데에는 너무 행복하지 못한 분도 계십니다.』그리고 그는 말을 덧붙였다.

 

 

『영들의 세계에서, 나는 돌아가신 러시아의 엘리자베스 여황만큼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서 섬기고 있는 분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여황은 이따금 손 맡에 보내오는 많은 임금의 명령과 글에 이름 적는 일을 일부러 늦추고 그래서 나중엔 그것들이 쌓여서, 그것을 조사하거나 잘 읽거나 할 수 없게 되어서 하는 수없이 신하들이 알리는 것을 믿고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에 이름을 적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황은 제 방에 물러가서 무릎을 꿇고 만일 제가 마음과 달리 어떤 바르지 못한 데에 이름을 적었다면 저를 용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

 

왕의 집안에 대해서 이때에 일어났다고 하는 다른 일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리를 사랑한 사람』으로서 잘 알려진 『G 씨라고 부르는 분』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되고 있다.

 

 

『1762년[74세], 러시아 황제 삐데로 3세가 돌아가신 그날, 스베덴보리는 나와 함께 어떤 모임에 갔습니다......, 한창 이야기하다가 그의 표정이 바뀌고 그의 혼은 이미 그에게 없고 무슨 이상하고도 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뚜렷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는 물음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그는 말하려고 안했지만, 꾸준한 물음을 받고나서 말했습니다.』그는 죽음의 성질을 밝혀 말하여 덧붙였습니다.

 

「여러분, 제발 이날을 써 두어서, 그것을 신문에 나는 황제의 죽음과 비교하여 주지 않겠습니까.」

 

이윽고 신문엔 황제의 죽음이 났는데, 그것은 스베덴보리가 말한 그 날에 바로 일어났다. 뻬데로 3세는 그의 작은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황이 그 뒤를 이을 자로 명하여서, 1762년[74세] 1월 5일에 러시아 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 얼마 안가서 그의 왕비인 독일 왕녀 까 자린 여황이 반역을 꾀하여, 내가 러시아를 마음대로 부리는 자라고 밝히고, 7월 17일에 뻬데로 3세는 한 반역자에게 감옥에서 목매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그 속눈(內眼)앞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고 전해오는 비극이었다.

 

 

스톡홀름에서는 그 뚫어보는 능력에 관해서 물어보는 것은 정해진 일이 되어 버렸다. 의견은 서로서로 달랐다. 어떤 이는 그것을 온 너비로 믿고, 어떤 이는 곧이 들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나치고, 어떤 이는 그 이야기를 곡두라고 물리쳤다. 그러나 스베덴보리 스스로는 그 책잡음에 부딪힐 것 없는 성격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

 

알려지지 않은 재미난 이야기가 남아 있다. 그 중에는 프랑스 공사관원인 J.B셰렐 교수가 말했다는 것이 있다. 그는 감사관과 개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가르침은 믿을 수 없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데, 스베덴보리는 어느 저녁에, 손님 몇 사람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영들의 세계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그의 말을 저를 잊고 귀담아 듣고 나서, 그 이상한 영의 힘이 믿을만한 지를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여기에 출석한 중에 누가 맨 처음에 죽을 지 말해 주기를 바랍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물리치지 않고, 얼마동안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진듯하더니 이윽고 솔직하게 말했다. 『오로흐 오로후손 님은 내일아침 4시 45분에 죽습니다.』

 

이 미리 알림은 대단한 자신을 담고 말했기 때문에 모두는 놀라 자빠졌다.

 

오로후손의 한 친구가 다음날, 말한 그 시간에 그 사람 집을 찾아 나갔다. 가다가 그는 오로후손 씨가 부리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주인이 방금 뇌졸중이 일어나서 죽었습니다, 고 그에게 말했다. 오로후손 씨의 방에 걸린 시계는 숨을 거둔 그 시간에 멈추어 있고 시계침은 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신사』가 말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 비길 데 없는 스베덴보리의 재치를 증거대고 있다. 학문을 넉넉하게 쌓은 기록하는 일을 맡은 아세테우스 칼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큰 감독 사무엘 트로이리우스는 트레셋트게임 - 그때 유행한 세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서 하는 트럼프 놀이 -를 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았는데, 벌이 맞수인 통상국 총재 엘란트 브로만을 잃었다. 브로만이 죽고 조금 지나서, 이 큰 감독은 커다란 모임에서 스베덴보리를 만나, 이 하나님을 본 사람을 놀려 주어서, 저와 그 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흥을 돋운다는 생각에 익살 투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감사관, 영계에 관해서 무엇인가 말 좀 해 주세요, 내 친구 브로만은 거기에서 어떻게 지냅니까.』

스베덴보리는 곧 그것에 대답했다, 고 말한다. 『나는 방금 두 세 시간 전에 그분이 그리 바탕이 좋지 않은 자들에 끼어들어서 화투치는 것을 보았지요, 저분은 귀하신 몸께서 트레셋트 게임을 같이 하게 되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계십니다.』『이렇게 그 말수작은 끝났다』고 칼 박사가 말하는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거기 모인사람을 웃겼는지를 가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엘란트 브로만은 대단한 속물로 평판이 나 있었다. 그는 몸가짐이 나쁜 왕 후레데릭 1세의 눈에 들어서 그 왕의 군계집(정부) 후레켄 타우베와 혼인했다. 스베덴보리는 「꿈일기」에서, 일찍이 그가 사치, 재물,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품었는데, 그러한 성질은 그에게 엘란트 브로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적었다. 브로만이 지닌 영의 형편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화려하게 살아서 세상일에만 마음 쓴 어느 한 사람을 나는 알았다. 그는 막 숨이 멎을려고 할 때,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행동하여서 사제나 모든 사람은, 그때에 보인 회개로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나는 그와, 그가 죽은 지 사흘 만에 이야기했는데, 그때 바로, 그는 거기에서 하는 사람 몇을 만났고, 또 세상에 있을 적에 즐겼던 것을 보았다. 그는 옛날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가 죽어가면서 보여준 회개는 전혀 아무 뜻도 가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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