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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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죽은 뒤의 목숨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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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의 목숨

 

 

1749년[61세]에서, 1757년 [69세]의 8년 동안에, 그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쿼터 판으로 여덟 권을 내고, 따로 엄청나게 많은 원고를 쓰고 있었다.

 

 

1758년[70세] 여름, 그는 다시 다섯 권의 책을 런던에서 내려고, 영국에 갔다. 그 책의 많은 것은, 앞서 「비밀」의 여러 장에서, 이미 세상에 알려진 것을 싯줄(계통)있게 고쳐 쓴 것인데, 그 가운데 한 책은, 스베덴보리가 지은 모든 책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널리 읽히는 「하늘나라와 지옥」이다. 다른 네 책은, 계시록 6장에 적힌 흰말(백마)을 영의 뜻으로 풀이한 「백마론」, 「마지막 심판과 바빌론의 멸망」, 「우주 사이의 여러 지구들」, 「새 예루살렘과 그 하늘나라의 가르침(교의)」이다.

 

 

이 책들 말고, 그는 「계시록 풀이」라고 제목을 단 엄청난 주해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그가 「비밀」에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풀이한 것과 같이, 계시록을 한절한절 풀이한 것이다. 이 책은 원고가 2부 인데, 세상에 내기 위해서 썼으며, 그 겉 제목 쪽에 「1759년[71세]런던에서」라고 한 것은, 그 해에 그것을 내려고 한 지은이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다시 이 생각이 바뀌었고, 왠지 모르지만, 그는 이 쿼터 판으로 된 네 권의 큰 작품은 결코 내지를 않았다. 하지만 7년 뒤 1766년[78세]에, 계시록의 대강 중요한 내용을 「계시된 계시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큰 책, 한권으로 냈다. 아무리 부지런하게 책을 쓴다고 하여도, 그렇게도 엄청난 책을 쓰는데, 어떻게 그 시간을 얻는지 알 수가 없고, 더구나 그는 「계시록 풀이」를 인쇄하는 이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모두를 고쳐 쓰기까지 하고 있다.

 

 

한 때, 스베덴보리가 쓴 철학책이 영혼의 탐구를 꼭짓점으로 했듯이, 지금 그가 쓰는 신학 책은, 거룩한 성, 또는 「하나님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고 하는 생각은, 그가 마태복음 제 6장에서 얻은 이 말씀을, 이때까지 출판한 거의 모든 신학책 첫머리에 표어로 써 넣을 만치, 그에게는 뿌리와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 생각은 「우주 사이의 여러 지구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문 안에 한 없이 키워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는 다만 한 지구 안에만 살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별에도 살고 있다고 내세우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와 지옥」이 우리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은, 죽은 뒤의 목숨을 다루고 있다는 데서이다.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다고 하여도, 하나만은 분명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이다. 이 어쩔 수 없는 달라짐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철학하는 이들은 영혼은 안 없어지는 것이냐, 아니냐를 논하여 왔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힘 있는 「변명」에서, 내가 헴록(독인삼)이 든 잔을 마신 뒤에는, 이 세상을 뜬 많은 친구들과 다시 맺어져, 제 경험을, 올 퓨즈, 헤시드드, 호모의 유리시즈*와 이야기하여, 『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조사도 해 본 것처럼, 저승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또 조사도 해 보고,그들 중에서 누가 현명한 지, 누가 스스로를 현명한 자라고 하는지, 사실은 현명하지 못한 것을 알면서』, 즐겁게 보낼 그 때를 그려보면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에 관하여 즐거운 바람을 품고, 『착하고 어진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이나, 죽을 때에나, 아무것도 나쁜 것은 없다』고 하는 진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현명한 사람은 하소연 한다.

 

 

* 올 퓨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가리오페의 아들, 도라기아의 시인이면서, 음악가」헤시드드는 「BC8세기쯤에 살았던 그리스의 시인」호머는 「BC 10세기쯤에 살았던 그리스의 장님 시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지은이.」이라고 말한다. 유리시즈는 「트로이 싸움에 참가한 지혜와 용기를 고루 갖춘 그리스의 장군.」

 

 

18세기의 정통과 기독교회는, 죽은 뒤의 목숨에 대하여 매우 막연하였다. 그들은 사람은 죽은 뒤에도 산다고, 실지로 가르치기는 하였지만, 언제, 또 어떻게 다시 살고 또 어떠한 삶이, 다시 살아난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알길 이 없었다.

 

「하늘나라와 지옥」에서 스베덴보리는, 내가 내세우는 말은 앞날의 삶에 관한 참된 사실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 밑바탕이요, 제 스스로 겪은 경험이 없어질 수 없는 증명이 다고 밝히고 있다.

 

 

그 때, 모두가 받아들인 생각에 대하여, 감히 그는 맞바로 맞서서 제 주장을 폈다. 천사는 처음부터 천사로 지음 받는 것이라고 교회는 말했다. 스베덴보리는 주장한다. 그렇지는 않다. 지옥에 있는 자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는 이도 전에는 땅 위에서 사람으로 살았다고.

 

 

사람은 그 몸이 다시 살아나는 그때까지, 영혼은 공기처럼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고, 교회는 말했다. 몸은 땅속에서 썩고 결단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다시 살아나는 것은 영혼뿐이다. 더구나 죽은 뒤, 원칙으로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 영혼은 완전히 사람이 다고 그는 밝혔다.

 

구원을 받은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하늘나라의 기쁨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높여 예배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이라고 교회는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여기와 같이 사람마다 제 일(직업)을 가지고 있다. 형식을 갖춘 예배는 오직 하늘나라 삶의 한 조각(단편)일 뿐이다. 그것은 의식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의 힘을 되찾는 것이다. 천사들은 머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가정생활도, 모임에도, 가기도 한다. 그들은 그 일과 바탕(기질)에 따라서 많은 사회로 나누어졌다고 그는 가르쳤다.

 

 

죽은 혼은 끊임없이 영원한 불속에서 괴롬을 받고 있다는 것이, 그때의 굳게 정해진 믿음(신념)이었다.

 

 

나쁜 욕심이 타고 있는 불 말고, 불은 있지 않다. 하나님은 누구 하나 벌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찾는 사랑에 따라서, 제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악한 마음 그것이 그 스스로에게 지옥형벌을 받게 한다. 보기를 들면, 색정에 미친 자는, 그 색정으로 이사람 저사람 가리지 않고 음행에 달려든다. 지옥 사회에서도 그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용서가 된다면, 지옥사회조차 그대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불법한 음행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벌을 받으면, 그 음행에 미친 혼도 잠시 동안은 음행을 조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못 간다. 얼마 안가서 다시 불법한 음행에 달려들어, 다시 벌을 받고, 그것이 영원히 되풀이 된다. 또 벌ㅇㄹ 받는 일에 가장 높은 기쁨을 느끼는 혼이 있다. 그것이 지옥의 영원한 찔림의 실지 모양이 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몇 백만의 세례를 받지 않은 어린이와, 딴 종교를 믿는 자는, 잃어버린 자들이라고 , 정통파의 교회직분을 가진 자들은 가르치고, 그래서 악마에게 먹이를 안주려고, 날씨가 어떻든 갓 태어난 젖먹이는, 특별히 그 작은 아이가 병에 걸려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지려고 하면, 더 한층 밖에 데리고 나가서 세례를 받게 했다.

 

 

그렇지가 않다고 스베덴보리는 가르쳤다. 딴 교를 믿는 자는 전체로 봐서, 기독교인 보다는 착하고 어질며, 그들은 가르침을 받으면 더 쉽게 하늘나라에 맞아들여진다. 어린아이는, 세례를 받고 안 받고 간에, 죽으면 곧장 하늘나라 사회로 데려가서 영으로 다 자랄 때까지, 주로 셋째 하늘나라의 여자 천사들이 부드럽게 감싸준다.

 

 

하늘나라와 지옥은, 지금 우리가 있는데서 아주 먼데가 아니고, 우리들의 영혼은, 지금 영들이 세계에 살고 있는 영들의 한복판에 있으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과 하나님의 진리를 찾으며 살고 있다면, 영들의 세계에서 하늘나라 천사들과 주고받는(교류) 착하고 어진 영들과 주고받고 있으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선과 하나님의 진리를 업신여겨, 오로지 자기의 선과 제 잘못된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영들의 세계에서 지옥의 영들과 주고받는 악령들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죽고 나서, 만일 착하고 어진 영이라면, 우리가 맨 끝으로 살 곳은 지옥이다. 죽음은 오직 우리 영혼의 옷인, 몸을 벗고, 이미 우리의 영혼이 거기에서 살고 있던 영들의 세계를 영의 눈으로, 지금 있는 그대로 눈여겨본다는 것뿐이 다고 스베덴보리는 말했다. 영계는 종잡을 수 없는 꼴을 한, 죽은 사람의 영혼이 꿈틀거리는 세계가 아니고, 지금 땅에서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그 영의 방면에서 완전한 사람의 꼴을 하고 사는, 영원하고도 참으로 있는 세계다.

 

 

『몸은, 그 영이 영계에서 얻는 그 영의만은 생각과 따뜻한 사랑에 알맞게 자연계에서 그 일을 이제는 더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은 죽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허파가 숨 쉬는 것과 염통의 움직임이 멈출 때에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은 죽는 것이 아니요, 단지 그가 세상에서 쓰기 위하여 가졌던 몸의 한 쪽과 떨어지는 것일 뿐, 그 사람 자신은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 자신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은 몸이 사람이 아니고, 영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영이 사람 안에서 생각하고, 그 생각이 따뜻한 사랑과 함께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사람은 죽으면, 다만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라는 것이 뚜렷하다』(「하늘나라와 지옥」445번).

 

 

다시 스베덴보리는, 「하늘나라와 지옥」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날 교회의 사람은, 하늘나라와 지옥에 관해서, 또 죽은 뒤의 제 목숨에 관해서는, 그 모두가 말씀에 적혀 있는데도,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참으로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많은 사람은 그것을 아니 여기기까지 하여, 마음으로, 누가 그 세계에서 와서 우리에게 말해 주었나한다. 그래서 세상 지혜를 많이 쌓은 자에게 특별히 퍼져있는 이런 아니 여김(부정)이, 마음이 단순한 이나, 믿음이 단순한 이에게도 물들여져서, 그들을 타락시키지 않게, 나는 천사들과 사귀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그들과 말하고, 또 모든 하늘나라에 있는 것과, 여러 지옥에 있는 것을 쳐다보게 해 주셨으며, 이 일은 13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런 일들을, 내가 믿지 않는 것도 풀어져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다. 지금 이러한 열어보이심이 곧 바로 주어진 것은, 이것이 주께서 오시게 되는 것으로 뜻매김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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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에, 「아타나시우스 믿음조목(信條)」이라고 제목을 붙인 논문 원고에서, 그는 대영제국에 있는, 남을 이끌만한 교회직분을 가진 모두에게, 그 다섯 권의 논문을 한 부씩 드렸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고 한다.

 

 

「영계일기」에서 그는, 세상에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학문이 있다고 생각되는 영국의 감독 한 분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적었다. 그 감독은, 주님을 단지 한 사람으로 밖에 생각지 않으며, 악은 그것이 민법에 걸릴 때에만, 죄일 뿐이 다고 생각한다고 고백을 하였다.

 

 

이 감독은 자기가 어떻게 해서, 국회 안에 있는 영국교회 감독들과 귀족들에게 보낸, 그 다섯 권의 책을 물리치게 했는지를 말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은 내가 지은 것이 아니고 주께서 지은 것이요, 주님은 하늘나라와 지옥과, 죽은 뒤의 목숨의 성질에 관한 것이, 밝혀지기를 바라신 것이요, 신학의 일은 이성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 다고, 엄숙하게 말로 밝혀서 그 감독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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