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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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영원한 세계 속에서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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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14.12.219

영원한 세계 속에서

 

(A) 영혼의 실체

 

 

『하늘나라(천계)에서 영혼은 새와 같은 것이다......, 영혼은 다리도 팔도 필요로 하지 않고, 힘살도 곧 살과 뼈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영(정신)」이기 때문에…….그러나 영혼으로서 살 때에는 아마도 우리들은 우리들이 그리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생각했던 것을 웃을 것이다』고 스베덴보리는 1745년[57세] 4월에 런던에 있는 한 여관방에서, 그 몸의 맨눈(육안)속에 숨겨진 영의 눈이 열려서, 그 뒤로 28년이나 되는 오랫동안을, 끊임없이 저 건너 세계에서, 영들의 세계- 하늘나라와 지옥 사이에 있는 가온지대(중간지대)― 하늘나라와 지옥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는, 인류가 생겨나서 지금껏 또 앞으로 태어날 사람 중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았고 또 허락되지 않을 신기한 일 중의 신기한 일을 마주하기에 앞서 적은 것인데 『영혼은 새와 같은 것이다, 발도 팔도 필요하지 않다. 거기에다 살도 뼈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참으로 『어린아이 같은 생각』인 것은 스베덴보리가 육신을 세상에 남겨두고, 이승을 떠나 저승에 들어가서 비로소 알 수 있게 허락된 것이 아니고, 그 몸은 현실로 이 자연계에 머물면서 영의 눈으로 저쪽의 실상을 뚫어지게 봄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해부학을 연구하는 마지막 목표는 영혼의 탐구 이었다.

 

 

그 탐구가 다 다른 곳은 영혼이 활동하는 맨 처음 지점을 찾아낸데 에 머물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말하자면 몸 깨닫기관(감각기관)에서 시작한 탐구의 끝이었다. 영혼의 실체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바야흐로 영원한 세계의 날에, 그는 영혼의 실체를 대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것은 새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또 그것은 핏줄의 정신적 물(액체)안에 깃든 것도 아니었다. 영혼은 사람 그것이다. 사람의 몸이 셀 수 없이 많은 기관으로 된 조직체인 것처럼, 영혼도 셀 수 없이 많은 기관으로 이루어진 한 조직체이다. 오직 하나 다른 것은, 사람의 몸은 자연의 원바닥으로 되었지만, 사람의 영의 몸은 영의 원바탕으로 된 것이라는 것뿐이다! 이 셀 수 없는 영의 원바탕의 기관으로 된 영적 원 바탕의 사랑은, 그 영의 원바탕에 자연의 원바탕(원질)을 입고, 이 자연계에 나타난다고 할 것이다. 맨눈(육안)으로써 자연계에 있는 것들을 보는 실체는, 그 영의 원바탕으로 이루어진 눈 곧 영의 눈이고, 몸에 있는 귀로 자연계의 음성을 여는 실체는 영체의 귀요, 먹을거리의 맛을 분별하는 실체는 혀 속에 숨겨진 영체의 혀이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스베덴보리가 쓴 후에 세상을 떠난 맨 마지막 큰 작품 「참(순정)기독교」에 적힌, 영원한 세계 안에서 행하여진 「영혼」에 관한 한 토론회를 생각한다. 그것은 하늘나라와 지옥 중간에 있는 영들의 세계에서 일어났다.

 

 

그 모임의 사회자는 「영혼이란 무엇인가, 그 특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냈다.

그것에 뽑힌 다섯 청년이 차례로 대답했다.

 

어떤 이는 「영혼은 큰골(대뇌)과 작은골(소뇌)사이의 골윗샘에 있다」고 대답하고, 어떤 이는 「그것은 머릿골의 삼뇌실에, 또는 선상체에 , 또는 여러 뇌수 실에 또는 외피 질에, 또는 굳은 뇌막에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것은 염통과 핏줄 안에 머물고 있다」고, 어떤 이는 「영혼은 생명이요, 그것은 사람의 전부와 각부에 스며들어 있다」고, 어떤 이는 「영혼은 사람의 합리성인 생명의 원리에 의하여 살아가는 에텔, 공기, 바람과 같은 성질을 가진 순수한 원질이다」고 대답했다. 이렇게들 대답한 뒤에, 사회자가 모인 무리들의 바람에 따라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세상에서 당신들은 영과 천사는 바람 또는 에텔을 닮은 마음과 영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은 영이며 천사입니다. 당신들은 스스로가 참으로 또 사실로 사람인 것을, 곧 세상에 있으면서 생활하고, 물질적인 몸을 가지고 생각 했던 바의 사람인 것을 똑똑히 알아차립니다. 생활하고 또 생각한 것은 물질적인 몸이 아니고, 그 몸속에 있는 영의 원바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당신들은 영이라고 부르고, 그 꼴은 몰랐지만, 지금은 이것을 봅니다. 당신들은 매우 많은 것을 듣고, 생각하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과 지혜의 꼴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은 사람 같은 꼴이고, 그 완전함은 아무것도 이것에 더하거나 빼어 버리지 않는 것이 필요 합니다. 더욱 그것은 영적 몸의 가장 안에 있는 꼴(形)입니다. 그리고 바깥 골은, 본바탕으로는 가장 안쪽의 꼴에서 갈려나오기 때문에, 당신들 스스로와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당신들의 영혼입니다. 간추려서 말하면 영혼은 사람 자신입니다…….그런데도 그것은 생명은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기관이며,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사시는 곳입니다』(「참기독교 69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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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들은 영의 원질은 자연의 원질을 가지고, 그 안팎을 말하자면, 메워버리고 이 자연계에 나타난다는 스베덴보리의 생각에 관련하여서, 그가 그렇게 영들의 세계에서 보고 들은 사실이 생각난다. 『나는 영국 왕립 학사원의 두 총재인 한스 스론경(Sir Hans Sloane)과 마틴 포크스(Martin Folks)씨가, 씨와 달걀의 존재에 대하여, 또 거기에서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 영계에서 의논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앞 분은 그것들을 자연에 돌려서, 자연은 햇볕에 의하여 이런 결과를 낳는 힘과 볕의 힘을 창조로부터 받는다고 버팀 변명(항변)을 하였다. 뒷 분은 이 힘은 창조하신 분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끊임없이 자연 속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의논을 풀기 위하여 아름다운 새가 한 마리 한스 스론 경에게 나타나, 그는 그것이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땅에 있는 같은 새와 다른지를 살펴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 새를 손에 들고 살펴보고서 아무 다른 것이 없다고 언명했다. 그는 그것이 어느 천사의 따뜻한 사랑이 새가 되어서 그 천사 바깥쪽에 나타난 것이고, 그것은 따뜻한 사랑과 함께 없어지고 또는 있지 않게 되는 것을 실지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경험으로 한스 스론 경은, 자연은 식물과 동물이 생겨나는데, 이바지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것은 전혀 영계에서 자연계로 흘러드는 것에 의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만약에 그 새가 그 아주 작은 데까지 땅에서 오는 서로 맞는 것(상응 물)으로 안을 채운다면, 그 새는 땅에 있는 새와 같이 영원히 지탱할 새가 될 것이다. 이 일에 그는 만약 내가 지금 영계에서 알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자연은 자연 속에 끊임없이 흘러드는 것을 붙박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경의 것(정신의 것)에 시중들고 있다는 것 밖에 자연에게 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344번).

 

 

(B) 표상(表象)과 서로 맞음(상응(相應)의 세계

 

 

스베덴보리가 일찍이 「꿈일기」중에서, 그의 너절한 생각은 그에게 꿈에서, 넝마 무더기로 나타나고(표상),그의 많은 더러운 것은 그가 잡아 없애야 할 해로운 벌레로 나타났다고, 그 영혼의 작관으로 적어 두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영원한 세계 속에서 사람의 모든 생각(사고)이, 모든 따뜻한 사랑이, 현실로 영의 원바탕으로써 꼴을 가지고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로 나타나는 것을 알아 차렸다. 사람의 생각과 따뜻한 사랑 모두를 한데 합친 사람의 영혼이, 영의 원질로써 지음을 받은 서로 떠날 수 없는 사람의 꼴이다. 더욱더 그 영적 사람의 꼴을 짜고 있는 많은 생각, 많은 애정은 그 사람 바깥쪽에, 그 많은 생각과 애정에 맞는 영의 꼴로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스 스론 경은 하늘나라 천사의 애정이 아름다운 새 한 마리로 현실에 그 천사 바깥쪽에 나타나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새로만 나타나지 않고 아름다운 식물, 아름다운 광물, 땅으로도 나타난다. 간추려 말하면, 영원한 세계에는 이 자연계에 있는 것과 꼭 닮은 것이 있고, 오직 하나 다른 것은, 자연계에 있는 모든 것은 자연의 원질로 만들어 진데 반하여, 영계의 모든 것은 거기에 사는 사람의 생각, 애정의 맞음(상응)과 나타냄(표상)이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하늘나라 천사들의 바깥에는 그 천사들의 영혼을 짜고 있는 생각, 애정에 알맞은 동물, 식물, 광물이 현실에 있고, 지옥에 있는 악마의 바깥에는 그 악마에 알맞은 동물, 식물, 광물이 현실에 있고, 하늘나라와 지옥의 중간에 있는 영들의 세계에는, 거기에 사는 영들의 영혼에 알맞은 동물, 식물, 광물이 현실에 있다. 천사, 악마, 영 저마다의 생각과 애정에는 변화가 있는 것처럼, 그 둘레에 나타나는 동물, 식물, 광물에도 저마다의 변화를 볼 수 있다. 다음에 스베덴보리의 말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로 맞음(상응)에 따라서 천사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나타내기 위한 설명으로, 나는 하나만 여기에 적겠다. 이성과 지혜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종류의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뜰과 공원이 보인다. 나무는 매우 아름답게 질서 있게 심겼고, 모아려서, 아치꼴을 한 들목(입구)이 있고, 둘레에는 산책길이 있는 정자를 만들고, 그 모든 것은 말로는 나타낼 수 없도록 아름답다. 그 안을 이성과 지혜에 있는 자들이 거닐면서 꽃을 모아 꽃다발을 만들어서 그것을 작은 아이들에게 걸어준다. 질시로 거기에는,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또 있을 수도 없는 몇 가지 나무와 꽃이 있다. 나무도 또 그 이지적인 자들이 품고 있는 사랑의 선에 따라서 열매를 맺고 있다. 그들은 정원과 공원, 또 과수나무와 꽃은 이지와 지혜에 알맞은 다는 이유에서 그러한 것을 보고 있다. 하늘나라에 그러한 것이 있다는 것이 땅 위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 안에 있어서, 자연적인 빛과 그 허튼 생각으로, 하늘나라의 빛을 제 속에서 없애지 않은 이들에게만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에서는 들은 적도 없고, 눈으로 본 적도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과 또 하늘나라의 일을 말할 때에는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천계와 지옥」 176번).

 

『지옥에는 나쁜 쓰임(用)― 나쁜 일에 도움이 되는 것 - 인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뱀,전갈,악어,호랑이,늑대,여우,돼지, 여러 가지 부엌이,박쥐,쥐,새양쥐,개구리,메뚜기,거미, 많은 종류의 벌레라고도 하는 모든 종류의 들짐승이고 또 헴록*(hem lock)과 부자(附子)요, 식물과 땅에 있는 모든 종류의 독이요, 사람에게 해로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이다.

 

 

* 헴록(hem lock)―미나리과에 딸린 두해살이풀, 또는 그것에서 뽑아낸 독약, 유럽이 원산지, 전체에 독한 독이 있어서 예부터 유럽에서 독배 사약으로 쓰이었으며, 소크라테스의 예는 유명함(옮긴이)

 

이와 같은 것은, 땅 위와 땅 속에 있는 그와 같은 것과 조금의 어긋남 없이 지옥에 나타난다. 그것들은 거기에 나타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땅 위에 있는 것 같이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는 것들은 그들의 나쁜 사랑에서 떼 지어 나오는 많은 욕심의 단순한 알맞음이며, 다른 이 앞에는 그것을 이러한 꼴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에는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지옥은 송장, 똥, 오줌, 썩은 것의 몹쓸 냄새로 차 있어서, 이것을 악마 같은 영은, 동물이 고약한 냄새를 즐거워하는 것처럼 즐기고 있다』(「하나님의 사랑과 지혜」 339번).

 

 

(C) 의심 품음(회의) - 그 아니 여김의 (부정적)과과 그리 여김의(긍정적)것 -

 

 

스베덴보리가 「동물계」를 세상에 낸 목적은, 이해로써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외에는 무엇이든지 결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있음을 해부학적으로 증거대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 믿음에 들게 하는 데 있었다. 『안 없어짐(불멸성)과 하늘나라라고 하는 것을, 그들은 헛된 말, 만든 이야기라고 아니 여긴다. 그들은 자연과 세상과 그들 스스로를 예배하고, 그들 스스로를 짐승에 비겨서 그 영혼은 사라지고 없어져 버린다고 믿고, 그리하여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이 부정한 일에 뛰어든다......, 이런 사람들에게만 나는 마음 쓰고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바친다.』

 

 

이것은 그가 신기한 일 중의 신기한 일, 곧 이 자연계에 살면서 28년 이라는 오랜 동안에 걸쳐 영계에 들기 전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영원한 세계에서 그가 바라던 것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써 알게 되었다. 말씀에 열어 보이시는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선은, 자기와 세상을 맨 끝 목적으로 하는 자는 결코 믿을 수 없고, 이와는 달리, 말씀에 열어 보이신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선을, 세상과 자기를 구하는 것보다 더 인생의 끝 목표로 인정하고,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인정되고 또 믿게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말씀에 열어 보이신 하나님의 선과 진리에 관하여, 그것이 명확하고도 이지적으로 알게 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의심쩍음(의혹)에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의심쩍음이 갠다고 하여도 앞의 사람은 믿음의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러나 뒤의 사람은 의심쩍었던 것이 풀리면 기쁨이 넘쳐서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참됨을 저승에서 얻은 많은 경험을 거쳐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참 뜻을 말하는 신학의 맨 처음 작품인 「하늘나라의 비밀」의 2568번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믿음의 교의(敎義)를, 아니라고 하기 지전에, 의심쩍어 하는 자도 있고, 그리 여기기 이전에 의심쩍어 하는 이도 있다. 아니라고 하기 이전에 의심쩍어 하는 자는, 나쁜 삶에 기우는 자요, 그리고 그 삶이 그들을 짜부라뜨리면, 그때에는 그들이 문제가 된 것을 생각함에 따라서 그것을 아니 여기고 만다. 그러나 그리 여기기 이전에 의심쩍어 하는 이는 좋은 삶에 기운이요, 그들은 주님에 의하여, 저 자신이 좋은 삶으로 향하게 되는 것에 만족스러우면, 그때에는 그들이 그 일들을 생각함에 따라서 그것들을 그리 여긴다.』

 

 

『사람이 )믿음의 교의와 같은 것에 대하여)생각하는 근원에는 두 원리, 곧 아니 여김의 원리와 그리 여김의 원리가 있고, 이성과 기억지에 붙어 있는 것에 의하여, 아니 감각에 붙어 있는 것에 의하여 곧이들리지(납득)않으면, 아무것도 믿지 않는 자는 아니 여김의 원리에서 생각하고 있지만, 그와는 달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것들을 참되다고 믿는 이는, 그리 여김의 원리에서 생각한다. 어떤 것이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참이 다고 하는데 대하여, 아니 여김의 원리에 있는 자는, 자기는 이치에 맞는 것과 기억지로 알아듣게 된다면 미디겠다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지로, 그러한 자는 절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 비록 보고, 듣고, 닿는 몸의 감각으로 알아듣게 된다고 하여도 믿으려 고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그와 같은 것에 새 이론을 만들어서, 마침내 모든 믿음을 없애 버림과 함께, 이치에 맞는 것의 빛을 잘못으로 바꾸어서, 어둠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 여김의 원리에 있는 이들은, 곧 그 일은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참이라고 믿는 이는, 이성과 기억한 지식에 딸린 것으로, 실로 감각에 딸린 것까지도 끊임없이 확인하게 하며, 그 관념이 밝혀지고, 또 세차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성과 기억에 딸린 것 말고는 어떤 근원에서도 빛을 얻지 못하며, 그러한 것이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요긴한 것은, 믿음의 길은 말씀에 열어 보이신 하나님의 진리와 선을 먼저 맘에 끌어안고, 그 다음에 , 그 진리와 선을 이성과 지식으로 확실히 인정하고, 그 확실히 인정한 선과 진리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세계에서 스베덴보리가 알도록 허락된 하나님께서 열어 보이신 것이다.

 

 

(D) 서로 맞음(상응(相應))의 원리

 

 

영원한 세계 안에서 스베덴보리가 본 놀라운 것의 하나는, 영계의 해였다.

 

이 해는 일찍이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사람, 예수로서 살고, 죽고, 다시 살고, 하늘로 올라간, 그대로의 사람 예수가, 그 한 가운데 있는 해이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 예수에게서 영계의 해가 나오고, 더구나 그 해는 정신의 사랑 또는 영의 사랑이고, 그 해에서 나오는 볕은 사랑의 선이요, 그 해에서 나오는 빛은 사랑의 진리요 생명 그것이었다. 그 위에 이 해는, 이 해에서 나오는 볕과 빛을 마음속에 받아 들여서, 그것을 따라서 살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 예수의 말씀에 보여주는 하나님의 선과 진리를 따라서 그 생명을 가다듬은 사람에게만, 그 정도에 따라서 사람 예수는 스스로를 해 안에 나타내신다.

 

 

하늘나라 천사는 자기와 세상을 구하는 사랑을, 이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리를 구하는 사랑에 복종하며 살아가므로, 이 영계의 해 안에 계시는 사람 예수를 45도 각도에서 받들어 모시게 허락 되었다. 자기와 세상을 찾는 사랑을, 말씀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복종시키는 것을 달 가와 하지 않는 자에게는, 곧 영계 안에서 사람 예수를 예배하는 것을 마련하지 않은 자에게 영계의 해는 아무것도 없고, 텅 빈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말씀의 선과 진리를 살고 있는 천사들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애정과 많은 생각에 맞게, 그 천사들 둘레에, 그 애정과 생각을 나타내는 동식물과 광물이 있다는 것을 앞에서 말해다. 자연계에 있는 동식물과 광물은, 이 영계에 있는 동식물과 광물에 그 안팎을 가득 채워서 살아가는 옷에 지나지 않는다. 곧 자연계에 있는 모든 것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을 자연의 원바탕으로써 덮고 있는 생명이 없는 것이고, 그 덮고 있는 것, 옷 아래에 있는 영의 원바탕에서 갈라내면, 이내 그 활동을 멈춘다.

 

 

사람 그것도, 사람의 꼴을 가지고 있는 영혼 그것이 자연적 원바탕의 몸을 몸이 살려고 몸에 걸치고 있는 자연적 원 바탕에서 짜 맞추어진 몸의 옷을 벗어 버리고 영혼 자체의 세계에서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계의 해도, 그 스스로는 아무런 활동을 보이지 못하는 무생물이다. 그 해를 활동하게 하는 근원은 영계의 해다.

 

 

자연계에 있는 해의 불꽃, 볕, 빛의 근원은, 영계에 있는 해의 불꽃, 볕, 빛이다. 지금 스베덴보리는, 자연계는 영의 세계를 나타내는 (표상하는)극장에 불과한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들은 자연계에 의하여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영계가 자연계의 본바탕(본질)이다.

 

 

이것은 반드시 말씀의 글자 뜻은, 그 속에 영계에서 알게 되는 영원하고 참된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 보기를 든다.

 

 

스베덴보리는 영계에서 말씀에 관하여 명상하고 있는 이의 둘레에는, 그 명상의 종류를 따라서 각가지의 말이 나타난다고 한다. 만약 그가 말씀을 올바르게 알고 있으면, 흰말이 나타난다. 그래서 흰말은 『말씀의 올바른 이해』를 나타낸다(표상한다). 이와는 달리, 자기와 세상 것을 찾아서, 말씀의 진리를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들의 둘레에는, 그 종류에 따라서 붉은 말, 푸른 말과 그 밖의 것이 나타난다.

 

 

구약성서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과 신약성서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는 모두, 그 글자 뜻에는, 영계에서 알게 되는 영원한 뜻과 진실한 뜻을 가지고 있고, 글자 뜻은 단순히 그 옷과 자연적인 나타냄(표상)일 뿐이다. 그래서 글자 뜻에는, 그 뜻밖에 어떠한 뜻도 없으며, 더구나 영의 뜻은 없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안 된다. 아니, 글자 뜻은, 그 속에 감추어진 영원하고 진실한 뜻에 의하여 굳게 세워져야만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우리들이 말씀에서 「말」이라는 글을 읽을 때, 자연계에 있는 말만을 생각하지 말고, 영계와 아울러 자연계를 만드신 그 분 쪽에서는, 영계의 말이 진짜로 산 말이요, 자연계의 말은 영계의 말이 자연계의 원 바탕을 몸에 걸친 말이요, 만약 영계에 있는 말의 실체가 없다면 자연계의 말은 없으며, 자연계의 말은 그 스스로는 단순한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말」이라고 할 때, 우리들은 자연히, 이 세상의 말 밖에 생각하지 않지만, 영원한 세계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말」의 영원한 뜻, 참뜻, 산뜻, 영의 뜻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이 구약,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만나게 되면, 그 말씀에 감추어진 영원한 뜻, 안에 있는 뜻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말씀의 글자 뜻에는, 글자 뜻만 있을 뿐, 영의 뜻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계는 그 스스로 있고, 사람의 몸은 그 몸 스스로에 의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과 꼭 같다. 자연계의 말은 영계의 말에 맞는(상응하는)나타냄(표상)뿐이다. 더욱 더 스베덴보리가 한 평생 중, 맨 마지막으로 세상에 낸 「참 기독교」*의 다섯째 장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십계명의 뜻을 자세히 해설하여, 자연적인 뜻은 물론이고, 영의 뜻과 하늘의(천적인)뜻을 밝히고 있는데, 보기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다섯째 계명을 풀이하여 이렇게 말한다.

 

『자연적인 뜻』으로는, 이 계명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일, 죽을만한 상처를 입히는 일, 또는 그 몸을 자르는 것을 뜻하고, 또 사람의 이름에 죽을 만치 해를 입히는 것을 막고 있다. 왜냐하면, 이름은 종종 목숨 그것과 같기 때문에.

 

더 넓은 뜻은 살인은 앙심(적의), 미워함(증오), 앙갚음(복수)을 뜻한다. 왜냐면 불이 연기 나는 잿속에 숨어 있듯이, 살해가 그 생각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옥불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것들은 생각으로 하는 살인이며, 법으로나 앙갚음이나 원수 갚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면......,행위가 되어서 폭발할 것이다…….「영의 뜻으로는」사람의 영혼을 죽이고, 깨뜨리는 가지가지의 방법을 뜻한다. 보기를 들면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종교에게서, 하나님 예배에서 떼어 놓는 일이다. 이것은 몹시 딱하고 어려움을 넌지시 말하는 것으로, 또는 싫어함(혐오)과 노여움(반감)을 퍼붓는 것으로 행하게 된다......,「하늘의 뜻」으로는, 죽이는 일은, 주님에게 방정맞게 성을 내고, 주님을 미워하고, 그 이름을 없애 버리고자 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말한다. 주께서 다시 오신다면, 유대사람들이 전에 한 것처럼, 그들은 실지로 그렇게 할 것이다.』

 

 

이 세 뜻은 사람 모두, 곧 자연적인 사람은 자연계에서, 영의 사람은 영의 하늘나라에서, 하늘의(천적인)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각기 몸에 배어있는 사상과 감정을 따라 아는 (파악하는)것이지만, 스베덴보리는 다시 「안쪽인, 역사의뜻」이 있는 것을, 저승에서 얻은 경험으로써 말한다. 이 뜻은 으뜸으로 유대교회에 관한 뜻이요, 자연의 뜻과 영의 뜻 사이에 있는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베덴보리는 영원한 세계에서, 말씀이 속뜻을, 먼저 「안쪽인, 역사의뜻(歷史的 意義)」에서 「영의 뜻」을 거쳐 「하늘의 뜻」에 차츰차츰 나아가면서 밝혀갔다.

 

 

*「참 기독교」 를 「예수 + 교회」는 순정 기독교(純正 基督敎)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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