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생애와 신학사상

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신기한 일중의 신기한 일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33:00
  • hit196
  • vote5
  • 59.14.12.219

신기한 일 중의 신기한 일

 

 

스베덴보리가 광산국 일을 물러 났을 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여섯 번째 외국 여행을 떠나서, 그 때에 쓰고 있던 중요한 책의 집필을 끝내려고 하였다.

 

 

그것은 「말씀의 풀이(강해)」였다. 오란다가 그 목적한 곳이었다는 것은 그 원고 한 장에 적힌 글에서 밝혀진다. 그러나 오란다 에 닿은 뒤에 그 계획은 바뀌었다. 그 책은 결코 세상에 알리지 않고, 훠리오 판으로 세 권이나 되는 원고 더미채로 묻히고 말았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서 임마누엘 타펠 박사(Dr. Immanuel Tafel)가 라틴말로 쓴 원고를 「적바림(비망록). Adversaria」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 놓았다. 요즈음에 와서, 알프렛 액톤 박사(Dr. Alfred Acton)가 「The Word Explained (말씀의 풀이)」라는 제목으로 여덟 권이나 되는 커다란 책을 영어로 출판하였다. 스베덴보리가 그 책을 내는 것을 그만둔 까닭은, 아마도 그 마음에 결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 때문일 것이다.

 

 

2월에 「말씀의 풀이」를 쓰고나 자, 그는 「성서 찾아보기」의 일에 다시 달라붙어서, 그것을 암스테르담에서 끝내려고 한 것 같이 생각 된다.

이 「찾아보기」야 말로, 거기에서 그가 나중에 글을 쓴 모든 신학서적 가운데. 성서 이야기를 끌어낸 보물 광이었다.

 

 

성서를 끝을 볼 때까지 연구하는 데는 히브리말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가 히브리말의 연구를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때쯤이라고 여겨진다. 히브리말은 그가 어려서, 웁살라 대학에서 고전어를 배운 적이 있어서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이사야서와 창세기의 찾아보기」에 손대고 있을 즈음,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음력, 1747년[59세] 8월 7일, 내게 형편이 달라져서, 하늘나라에 옮겨졌다.」그것이 그가 하나님 말씀의 성질을 또렷하고도 더 깊이 알아차려서, 앞서 쓰던 것을 그만두고, 전혀 새로운 것을, 아주 다른 쪽에서 쓰기 시작한 올바른 때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그의 마음이 바야흐로 하늘나라로 열려서, 하나님 말씀의 영적 내용에 담긴 진리를 완전히 알아차려서, 그 새 계시로, 앞서 풀이한 글이 충분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 되고 있다.

 

1748년[60세] 12월, 그는「하늘나라의 비밀」을 쓰기 시작해서 이듬해 6월에 첫째 권을 마쳤다.

 

이 책은 스베덴보리가 창세기를 풀이한 네 번째 것이었다. 첫 번째 것은 「모세가 말한 창조 이야기」라고 이름 붙인 작은 논문인데, 거기에서 그는 성서의 글자 뜻을, 또 그것이 「하나님 예배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보여주는 우주의 온 경치와 어떻게 걸려 있는지를 다루고, 두 번째로 쓴 「말씀의 풀이」에서는, 창조 이야기와 『안쪽에 있는 역사적인 뜻』은 유대 민족을 다루어서 그것을 다시 오실 메시아를 미리 알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 번째는 그가 갖고 있던 성서의 끝머리에 적힌 「적바림(비망록)」속에 들었고, 지금은 그것을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한 조각」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1747년[59세] 끝 무렵에 썼을 것이다. 그가 이것들을 연구 하고 있을 때, 창세기에는 그보다 앞서 적힌 것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뜻이 감추어 있었으며, 그 「영으로 본 뜻」또는 「속 뜻」은 「한사람. 한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주의 왕국의 발전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젠 그것을 새롭게 손질 해야만 했다.

 

1748년[60세] 9월, 그는 오란다 에서 영국에 갔으며, 거기에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책에서 그는 성서의 역사적인, 또는 『영적이면서 자연적인 뜻』에서, 사람 마음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다루는, 참 영적인 뜻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뜻을 행해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천사들이 보고 있는 그대로의 말씀』이었다. 바야흐로 그는 새 책을 써나가는 빠르기뿐만 아니라― 첫째 권은 여덟 달 밖에 안 걸렸다― 또 글체의 변화까지도 설명하는 영원한 세상에서 오는 영감을 받고 있었다. 이젠 그에게 말의 뜻에 대하여, 상응(대응)에 대하여, 어느 것을 넣고 빼야할 지를 망설이거나, 의심하는 일은 없었다. 이제는 『정통설(正統設orthodox)』로 된 신학 하는 데서 쓰이는 말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특히 주님 되신 하나님, 우주를 지으신 분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지에 털끝만한 의심도 없다.

 

 

『다음의 지은 책에서는, 주라는 이름은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뜻한다. 그분이 다른 아무 이름도 덧붙이지 않고 「주」로 불린다. 온 하늘나라에서 널리 골고루 주로서 인정받고, 또 우러러 받드시는 이는 그분뿐이시다. 왜냐하면, 그 분께서 온 하늘나라와 땅을 다스리는 모든 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책과 그가 앞서 지은 모든 책과 비교하면, 이젠 그가 권위를 지닌 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을 바로 알아 차릴 수 있다.

이즈음, 스베덴보리 마음에 일어난 변화를 무엇보다도 더 분명하게 하는 것은, 그가 쓰는 용어의 달라짐이다. 그보다 앞서 쓴 책에 쓰인 표현 중에서 얼마는―어느 만큼은 그 생각까지도―토종의 이른바 정통 신학에서 얻었으며, 그가 그 안에 있으면서 자라온 루터 교회의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나가는 중간 시기의 작품에서 하나님에 대한 세 인격*과 대상설(代償設)**을 믿는 것처럼 여겨지는 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이 새로운 저술에서는 이른바 정통 설을 철저하게 물리치고 있다.

 

 

*「하나님의 세 인격」이란: 정통과 신학의 신관에 관한 근본적 교리이며, 「아버지 하나님, 아들하나님, 성령하나님」또는 「아버지인 한 인격, 아들인 한 인격, 성령인 한 인격」이 있는바, 그러나 「세 신」이, 또는 「세 인격」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직 한분 하나님, 오직 한분의 인격 밖에 있지 않는다는 이성(理性)을 무시한 삼위일체설.

**「대상설」이란 :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그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몸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노여움을 달래서, 사람을 지옥에서부터 구원했다는 기괴한 말.

 

**************************************************

 

 

몇 년 동안 스베덴보리는 영의 체험을 날마다 적어나갔다. 맨 처음에 그는 그런 경험을 『말씀풀이』의 본문에 간단히 써두고, 영들과 의논한 것을 적은 글에는 표를 하여 두었다. 그런 글을 지은 것은 세상에 내어 놓을 생각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는 그런 체험을 『영계의 일기』로 알려진 독립된 책으로 적었다. 이 일기 맨 처음 148 항목은 그가 아직 스웨덴에 있을 무렵에 적은 것인데, 지금은 잃어 버렸다. 그러나 그 내용은 스베덴보리가 몸소 만든 『영계일기의 찾아보기』에서 알 수 있다. 1748년[60세] 9월에 적은 한 주(註)를 단 데서, 잃어버린 그 원고는 화롯불 속에서―어떤 부주의로―타 버린것 같이 생각 된다.

 

 

스베덴보리가 다른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갑작스럽게 된 것이 아니고, 점진적이었다. 그 첫 번째는 그가 「동물계의 얼개(구조)」를 쓰기 시작한 1743년[55세] 10월이었다. 주님이 처음으로 그에게 나타난 것은 ― 그것은 「꿈일기」에 적혔지만―1744년 [56세]에 일어났다. 그 영계를 들여다 본 경험은, 어느 영이 그를 불렀을 때에 높아졌다. 그 다음에 1745년[57세] 4월에 『부르심(召命)』이 왔다.

 

그때부터 그는 하늘나라에 있는 때에 땅위에도 있었다.

 

 

그는 영들이 사람에게 일부러(의식적) 작용할 수 있는 이러저러한 방법을 적고 있지만, 그는 영들을 처음에는 『어렴풋이 보고』, 그들이 나타남과, 다가옴과, 떠나가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여러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영들의 무리에 둘러 싸였던 일을 말하고 있다. 또 그는, 다른 세계는 도리에 어긋나고 악한 세력과 악한 영들로 차 있어서, 그들은 아주 많은, 단순하고 성실하지만 가르침을 받지 못한 영혼들을 붙들어 매놓고서, 그 영혼들은 그 스스로의 틀린 생각과 믿음 때문에 거기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들을 위하여 그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던 것이다.

 

어느 날 밤에, 그는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나, 떨리면서도 그가 『한 무리의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그 천사들 한가운데에 메시아 그분께서 계시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러자 이 천사들은 『청동(靑銅)과 벽(壁)』이 되어서, 그를 악에서 지키려고 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낮은 땅』이라고 불리는 영계의 어느 곳에 있는 불행한 이들에게 보내졌다.

 

 

『나는, 오 하나님, 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님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님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는 비통한 소리를 들었다.』

 

그 불쌍한 이들 가운데서 한 사람은, 저는 제게 무서운 고문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영들에게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하면서 슬퍼하였다. 스베덴보리는 그를 위로하면서,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마침내 당신들을 고문을 받고 있는 그 곳에서 데리고 나와서 하늘나라에 올려주십니다 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는 그 불쌍한 이들이 하늘나라에 올리어져서 흰 옷이 입혀지고, 가르침을 받고, 아름다운 저택을 받게 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있는 한 사람을 품고서 거기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 이 일은 스베덴보리가 1766년[78세]때 세상에 낸 『계시에 의한 묵시록 풀이』의 325. 326. 329. 843. 845. 846. 850. 884. 886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주를 믿고 그 계명을 따라서 산 사람들은 용(龍)의 패거리―믿음만의 사람을 건져낸다는 가르침을 받드는 자들―들에 의하여 꾐을 받지 않도록 『낮은 땅』에서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마지막 심판이 행하여져서 용의 패거리와 나누어진 뒤에, 주님에 의허여 하늘나라로 올리웠다.

 

 

『그들 가운데서 거의 반은 탱크와 탈것을 타고, 여기저기 안내를 받으며 다니는 것처럼 그들에겐 생각되어서, 이곳이나 저곳이 그들의 좋아함과 맞는 지 아닌 지를, 곧 그들이 거기에 있는 영들과 (생각과 느낌에서)꼭 맞는지 아닌지를 낱낱이 검사를 받는다.』왜냐하면, 영혼은 제각기 마침내 영원토록 편히 쉴 곳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세상에서 알았던 두 사람이 내적(內的)인 하늘나라로 올리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들이 거기에서 알게 된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것이며, 그것에 비교한다면 땅에 딸린 세상의 기쁨은 모두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것은 『즐거움 모두를 다 모은 것이오, 몸의 욕심과 앞날의 괴로움에서 풀려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느 날 밤, 잠이 들 기전에, 그는 내적인 여러 하늘나라에 있는 많은 천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온 하늘나라가 이렇게 하여 멈추지 않고 주님을 떠받들기 때문이 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나라 형편에 대하여 준비가 없는 이에게, 그 나라의 공기는 그들을 숨 막히게 할 만치 기분 나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실지로 어떤 영들은, 꼭 하늘나라에 올라가고 싶다고 바라서 거기에 올라갔는데, 올라가자마자 거꾸로 아래를 향하여 떨어졌다.**

 

 

** 하늘나라로 올 리우는 이들은 말씀의 선(善)과 진리로 그 영이 구성된 이들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의지와 이해 안에 받아들인 선과 진리로 짜 만들어졌다. 그래서 말씀의 선과 진리가 영계에서 볕과 빛으로 나타나는데, 말씀의 선과 진리로 짜 만듦이 되지 않은 영의 몸이나 영혼에 흘러들 때, 두더지가 햇빛과 볕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그 영혼은 스스로를 그 빛과 볕이 흘러들지 않는 세상, 곧 지옥을 향해서 제 몸을 내 던진다.

 

 

1748년[60세] 3월 1일, 그는 죽음과 부활 상태와 비슷한 것을 경험하였다.

『나는 이날 아침, 사람이 죽을 때의 상태와 또 거기에 있는 죽고 나서의 형편을 알기 위하여, 그러한 상태를 맞게 되었다. 실지로 나는 죽지는 않았지만, 몸은 아무느낌이나 깨달음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동안 나는 죽어가는 사람들에게서 생기는 여러 가지 실제 사정을 알아차리고 기억해 두기 위하여, 내 안의 목숨 ―정신―은 완전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는 그때, 제 숨이 부분으로 멈추고 『하늘의 천사들이 심장*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차지하고』그것을 악한 영이 차지하지 못하게 잡도리(단속)하였다고 적고 있다.

 

 

『누구든, 사람이 숨이 끊어져 갈 때에는 하늘의 천사들이 재빨리 거기에 나타난다. 그들은 그 사람 머리맡에 앉아서 악한 영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쉬지 않고 기키고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이렇게 섬기고 있다. 참으로 그 천사들은 영혼이 그 살던 집(몸)에서 풀려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곁에 머물러 있다. 사람이 잠자리에서 또는 싸움터에서 또 그 밖에 어떻게 죽든, 그 일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 가운데서 목숨을 가진 이는 모두―그 몸의 군데군데가 아무리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지만, 몇 천 마일이나 떨어져 흩어졌다고 할지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모아져서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영계일기」1092항목).

 

 

이러한 경험은 『영계일기』에 적힌 다른 많은 것과 같이 『하늘나라 비밀』속에 넣었는데, 어떤 종류의 천사들은 이런 일이 밝혀지는 것에 노여움(반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런 열어 보임(계시)은 신기한 일(기적) 대신에 주는 것인데, 그것이 없다면 사람은 그 책(하늘나라의 비밀)의 성격을 알지도 못하고, 사려고도 않고, 읽지도 않고, 이해도 못하고, 그것에 의하여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고, 그것을 믿지도 않고, 간추려 말하면, 사람은 그 으뜸제목(주제)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대로 그냥 있게 된다. 다만 무엇을 안다고 하는 자만이, 그 중에서 거의반이 그것을 외면하고 말 것이다』(「영계일기」4123항목).

 

 

이 놀라운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두 세계에 같은 때에 살고 있는 이―스베덴보리―를 영들 스스로는 한가지로 그를 알 수 없는, 놀라운,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렀다(「영계일기」102항목).

스베덴보리는 그의 「영계일기」속에서 「신기한 일 대신에」저승의 사실을 열어 보였다고 적었지만, 끼친 원고(유고(遺稿)로 남긴 다음다음 해에 지은 것에서는, 그러한 열어 보임이야 말로『신기한 일 중의 신기한 일』이라고 언명하고 있다.

 

『주께서 그 스스로를 보여주시는 것과 영계에 들게 하는 것은, 모든 신기한 일도다 훨씬 낫다. 이 일은 사람을 지으시고 나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내게 주신 것처럼 주신 일이 없다. 황금시대 사람들은, 참으로 천사들과 말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들은 자연의 빛 말고 어떠한 빛 속에 있게 하지 않으셨으나, 내게는 영의 빛만이 아니라 자연의 빛 속에서 같은 때에 있게 하셨다. 이 방법으로 나는 하늘나라의 놀라운 것을 보고, 천사 중의 한 삶(인식), 주의 가르침을 따라서 주님의 인도를 받게 하여 주셨다.』(「새교회 교전(敎典)」52 항목).

 

『영계일기』내용에 이보다 더 들어가게는 하지 않는다. 『The Spiritual Diary』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옮겨서 다섯 권이나 되는 큰 책을 미국에 있는 스베덴보리 재단(The Swedenborg Foundation)에서 냈다.

 

스베덴보리가 이 동안에 맛본 영의 경험은 거의 다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용기를, 보통 모험을 감당하는 것과는 다른 용기가 있어야 했다. 여기에는 높고 귀한집안에서 태어나서, 비할 수 없는 타고난 바탕이 넉넉하고, 학문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계에서도 문을 열어, 영예로운 모자를 그 머리에 씌워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그 재능과 영예로써 무엇을 다하려고 하였는가. 그는 그때 사람들에게서 업신여김만을, 정통파의 교직자에게서는 못살게 구는 것만을, 팔리지도 않는 책을 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밖에 인정하지 않는 친척들에게서 앙심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인생길에 모든 것을 걸기로 하였다. 그는 그가 지은 한 해부학 책에 적기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모르던 것을)발견했다는 영예가 아니고,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만 진리의 벗에게만 하소연 한다......, 그 시대 사람들의 일만을 생각 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일을 위하여 밖에 태어나지 않았다. 몇 천 년의 세월이, 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뒤에 올 것이다. 비록 어떤 까닭으로 같은 시대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입을 다문다고 하여도, 곧이어 올 사람들을 눈여겨보라.』『앙심도, 좋은 뜻도 품지 않고서 판정을 내리는 이들이 올 것이다』고 그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였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갚음도 없는 인생길에 모든 것을 거는 것도, 다른 위험에 비하면, 죽은 이와 주고받고, 마귀로 꽉 찬 영들의 세계와 주고받는 위험에 비긴다면, 문제가 안 되다. 그들은 그를 떼 지어 덮쳐서 그 몸도 혼도 모두 부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위험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잠자리에서 자고 있으면, 그들은 그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하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이성을 부수기 위하여 처참한 가위와 곡두로써 그를 에워쌌다. 그에게 자살할지도 모를 마음을 불어 넣었다. 그들은 그에게서 이해력을 빼앗아 버리는 것을 마시게 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의 몸 여러 군데에 무시무시한 괴로움을 주어서 그것 때문에, 그는 토하기도 하고, 또는 정신도 잃고 열도 났다.

 

 

『나는 다른 이들이 그 괴로움을 견딜 수가 있었을까, 의심하였다』고, 그는 말한다.

① 『그러나 나는 그것에 익어져서, 여러 번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당해낼 수 있었다』어느 때는 한 사람의 영이 뒤에서 몰래 그에게 와서, 비수로 그를 찌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나는 염통이 꿰뚫린 것처럼 느꼈다』고 말하며, 『또 바로 그 뒤에 사람을 손쉽게 죽이는 것 같은 찔리는 아픔을 머릿골 속에 느꼈다. 그러나 나를 주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무섭지가 않았다. 주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하여 영들의 세계에 골고루 퍼져있는, 말도 할 수 없는 강렬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미움의 결과, 주께서 순간마다 사람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곧 죽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주께서 지켜 주시는 이에게는 어떤 위험과 해로움도 더할 수가 없다. 그 일은 나는 많은 놀라운 경험에서 알게 된 것이요, 그래서 드디어 지옥 패거리 속에서 가장 악한 자까지도 무서워하지 않았다』(「영계일기」2922,2923항목).

 

주님께서 감싸 주시는데 대한 높은(숭고한)믿음(신뢰)과 꼭 어린아이와 같은 기댐은 스베덴보리가 지난 용기의 알맹이 였다. 그러나 그는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이 헤아릴수 없는 영적 값을 지닌 지식을 땅에 가져오려고 그 모든 것을 견뎌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cy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