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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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성서 연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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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14.12.219

성서 연구

 

 

일찍이 「동물계」를 다 쓰고 나서, 혼자 낙엽 지는 공원을 거닐고 있을 무렵, 그에게 찾아든 슬픔과 외로움은, 이제는 깊은 평안함과 흐뭇한 생각으로 바뀌었다.

 

떠들썩하고 흐트러진 의심과 흐리멍덩한 물결에서, 지금은 조용해진 확신의 항구에 닿아 있었다. 이제는, 그는 알아주는 이 없이 혼자서 다른 나라에 있는 쓸쓸함에 더는 시달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세상에 있는 그를 아는 이들과 사귀고 있었다. 여기에 아무도 그 일을 아는 이가 없은들 무슨 거침이 있으랴!

 

 

현미경에서 볼 수 있는 세계만 인정하는 학자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그는 제가 누구의 종인지 알고, 또 지금까지 태어난, 또 앞으로 태어날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큰 맡은 일(사명)이 그에게 있었다. 눈물겨운 은총과 영광에 속마음은 떨고 있었다. 이젠 밤마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꿈 말고, 그는 영들과 천사들과, 명확한 자기의식을 가지고서 사귀며, 그 사귐 속에 끊임없이 하나님이 함께 계심과 이끄심을 느끼며, 마음은 평안함과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게 성서에 있는 영의 뜻을 밝히려면, 성서를 끝 간 데까지 연구해야만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먼저 구약과 신약성서 모두의 찾아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성서 찾아보기」(index Biblicus)는 훠리 판으로, 세 권의 책에 남김없이 써 넣은 알파벳 차례로 된 표이고, 그것을 만드는 데 1745년[57세]런던에 머물고 있을 때의 남은 기간과, 스웨덴과 오란다 에서 보낸, 다음의 세 해를 드렸다. 그는 세상의 교의학과 조직신학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음을 물론이다. 강해하는 책으로 맨 처음에 쓴 것은, 말씀을 조목조목 주의 깊이 연구한 뒤에, 광범위하게 만든 풀이이며, 그것은 지금 「철학자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고 있다. 물질이 아닌 생각을 나타내는 표시(상징)라는 말씀의 연구에서 한 원리를 세우려고 처음에 해본 것이 『본뜬 글자(상형문자)의 열쇠』라는 제목을 단 원고 속에서 보게 되는데, 이것은 아마 스베덴보리가 「동물계」의 맨 나중 부분이 인쇄에 들어갈 즈음인 1744년[56세]10월 이전에 쓴 것으로 생각되며, 「상응과 표상」이라는 짧은 논문에서도 같은 생각을 펴고 있는데, 여기에 그는 처음으로 영적인 뜻을 감추고 있는 표시(상징), 표적으로서 쓰이는 말씀을 찾아내려고, 성서를 조사하고 있다.

 

 

「모세가 말한 창조 이야기」라는 작은 논문은, 1745년[57세]가을에 썼지만, 이것은 성서를 처음으로 연구해 보려는 것이고, 이 논문 마지막에서 그는 제삼(再三)머지않아 오셔서, 창세기에서 말하는 뱀의 머리를 짓밟으실 메시아를 말하고 있다. 그 마지막 쪽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745년[57세] 11월 17일, 여기에서 나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께서 내가 가기를 바라는 그 길로 나를 이끄셔서 그 길을 걷게 하여 주소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거룩하게 되고, 또 그 영을 받아서 언제나 공정한 길에 머물게 되기를…….』.

 

이 엄숙한 고백은, 11월의 일요일에,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풀이』* 라는 큰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는 그 책에 1747년[59세]2월까지 그의 시간을 바쳤다.

*『말씀의 풀이』의 본디 이름은 Explicato in Veraum Historicum Vteris Testamenti이고 The Word Explained「성서풀이」라는 여덟 권이나 되는 큰 책으로, A. 악톤 씨가 영어로 옮겼다.

 

 

그 책을 쓴 목적은 그 책 첫머리에 적고 있다.

『우리들은, 특히 하나님 나라를 탐구할 목적으로 성서를 살펴보지 않겠는가......,성서는 여기저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다룬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 나라는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할 적에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메시아는 바로 오시려고 하신다.』고 그는 1746년 [58세]11월에 썼다.

 

『지금은 메시아가 그 신부와 함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실 것을 기다리는 거룩한 날이다』고 그는 12월에 썼다. 『그 때가 지금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도 좋다고 하실 것이다』고 그 이듬해 5월에 썼다. 영의 사정에 있어서, 심한 또는 전반적인 굶주림이 있기 때문에, 메시아가 그 영광 가운데 오실 때가 다가오는 것이 틀림없다. 그 일은 글자의 뜻을 따라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행하여진다고 그는 생각 하였다. 그것은 메시아를 영적으로 인정하여 주는 자들에게 곧, 메시아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바로 알고 그 앎 속에 메시아를 인정하여 주는 자들에게 오시는 것이다. 누구에겐가 벌써 보내셨다는 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스베덴보리, 그 사람이었다.

 

 

그가 말씀의 영적인 순수하고 영원한 뜻을 밝힌 것은, 차차로 나아가면서 이룩되었다.

 

천천히 그는 숨긴 뜻을 알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것은 그가 앞서 해부학을 연구했을 때와 똑 같이, 부지런하게 말씀을 연구한 데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영이나 천사에게서 그것을 듣고 배운 것이 아니고, 주님에게서만 배웠다고 뒷날에 밝히 말했다.『순정 기독교779항 참조』.

 

그것은 그 가르침을 받도록 많은 과학으로 갖추어진 마음속에, 주님께서 가르침을 불어넣으시는 또는 흘러드는(유입)것에 의해서 였다. 그것은 성서를 자세하게, 꾸준히 연구하는 데서 얻게 된 열매이었다.

 

「말씀의 풀이」는 모세5경*에 걸쳐 있고, 으뜸으로서 유대교회와 기독교회를 미리 알리는 것으로서 다루고 있다.

 

* 「모세5경」은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 곧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를 가리킨다.

 

스베덴보리는 거기에 글자뜻 속에 감춰진 표징 하는 뜻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훗날 스스로 책으로써 세상에 나타낸 「하늘나라의 비밀」이나, 그밖에 다른 책에서 밝히 보여주는 『속뜻(영적의의)』이 아니고, 오히려 『속에 있는 역사적인 뜻』이었다. 그는 종종 사물의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나는 이 말씀들을 알 수가 없다』고 그는 말하거나, 또 『이것은 아직 희미하다』, 『나는 이 말씀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놔둔다. 나는 이때까지 이처럼 그 풀이에 어리둥절한 적이 없다』고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속에 있는 역사적인 뜻』은 말하자면, 문틈으로 살짝 엿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안에 있는 역사적인 뜻』 그것도 『속뜻』의 한 가지요, 영원한 세상 안에 있는 사물의 모양과 형체를, 몸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영은 영의 세상에 있다는, 이상한 일 가운데의 이상한 일에 의하여 보고들은 사실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다.

 

「말씀의 풀이」는 아마 1745년[57세] 11월에 시작해서, 1747년[59세]2월에 마쳤다고 생각 되는데, 1746년[58세]1월에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영들과 이야기 하고 있는 사이에도, 다섯 달 동안, 내 나라에 있는 동무들과 함께 있었고, 다른 이들과도 사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꼭 앞서처럼 다른 이들 사이에 있었지만, 누구도 내가 하늘나라 사람들과 사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모두와 한참 사귀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이따금 영들과 말하고, 또 내 둘레에 있는 영들과도 말하였다......, 이럴 때, 그들은 내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알렸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도 긴 기간을 땅에서 동무들과 함께 있으면서, 또 하늘나라에 있었는데, 곧 1745년[57세]4월 중순에서 1746년 [58세]1월 29일까지 거기에 있었다. 다만 내가 스웨덴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한 달 동안은 예외이다. 나는 음력 8월 19일에 스웨덴에 닿았다.』(「말씀의 풀이」943,1003,3347항목 참조)

 

 

이 2년 동안, 스베덴보리는 광산국의 일을 열두 번 쉬었을 뿐이다. 그는 야금학 문제를 논하고, 광부들에게서 일어나는 다툼을 풀어주고, 돈의 지출금과 임관을 의결하고, 참여가 없을 때에는 선배 격으로서 두세 번 회의를 주관하였다. 그래서 벨에쉐르나 참여가 물러났을 때, 국이 하나가 되어서 스베덴보리를 그 빈자리에 추천하려고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는 왕에게 글로, 지금 벌이고 있는 중요한 일을 한 번 더 외국에 나가서 이루고저 하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분을 그 자리에 뽑아서, 그 직무에서 풀어 달라고 간청했다. 『30년이나 더 넘게, 나는 광산국의 한 임원으로서 일하면서, 여러 번 여행하여 많은 책을 세상에 냈지만, 그것 때문에 어떤 대가를 나라에게 바란 적은 없었습니다.』고 푸레데릭 왕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은 폐하에게 벼슬을 물러날 그때의 봉급 반액을 계속해서 삶을 마칠 때까지 내려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참여라는 영예로운 이름은 거두어 주시기를 바랐다.

 

 

왕은 스베덴보리가 지금 쓰고 있는 새로운 책은 다른 그 모든 책처럼 나라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그 소원을 받아 들였다. 스베덴보리가, 그 일에서 푼다는 왕의 명령을 광산국에 넘겼을 때,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는, 그리도 가치 있는 일꾼을 잃게 되는데 섭섭해 하면서, 그가 그때까지 관계하고 있던 문제가 풀리게 될 때까지는 잇따라서 회의에 나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 일에 동의하고 다섯 번 넘게 회의에 나갔다. 1749년[59세]6월 17일, 스베덴보리는 여섯 번째로 외국여행을 떠나는 전날 밤에, 광산국에 찾아가서, 거기에서 일하는 동안에 모두에게서 받은 좋은 뜻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덧 붙였다.

 

 

광산국은 그처럼 꼼꼼히 마음을 써 가면서 충실하게 그 직무와 책임을 다한 데 고마운 뜻을 나타내고, 탈 없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러고 나서 그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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