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와 신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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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의 삶과 사상 - 광산국(鑛山局)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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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국(鑛山局)

 

 

지금은, 선왕에게서 임명을 받은 감사관의 자리를 인정해 줄 것을 여러 차례 광산국에 청원한 것이, 마침내 하찮은 성과를 거두었다. 1723년[35세] 3월에, 광산국에서 회의에 나와 달라는 요청이 왔다. 국회는 폐회중이고 스베덴보리는, 지금은 귀족으로서 국회의 한 사람이기에, 광산국의 처치를 국회의 심의에 넘길지도 모를 입장에 내몰렸다. 광산국 임원들은, 이 일을 알자, 태도를 누그러뜨려, 며칠 후에, 그를 의안재결(議案裁決)에서 투표권과 발언권을 가진 임시 감사관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봉급의 지불이 없는, 또 정규 감사관에 빈자리가 생길 경우, 그것을 보충한다는 약속을 받는데 불과했다.

 

 

그 후 1년이 지나도, 그 일에 변화가 없던 때에, 웁살라에 있는 에릭 벤세리우스에게서 소식이 왔다. 천문학교수인 닐스 게르스유스의 죽음으로 수학부에 자리가 비어서, 그 자리에 스베덴보리를 추천하고 싶다는 뜻이 적혀 있었다. 스베덴보리의 학식과 천재성은, 대학에서는 다른 곳보다 더 알려졌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뜻에서는, 그는 대학의 문헌협회 회원들과 영국 유학중에도 글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문헌협회 창립자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고, 그 협회와의 관계는 결코 악화된 일은 없었다. 그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초고가 그 협회에 제출되어, 그 회합에서 읽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으며, 또 출간된 책은, 그 의사록에 비평도 실렸다. 그 때에, 그는 『구리에 관하여』라는 논문의 분책(分冊)을 보내기도 하였다. 교수직은 넉넉한 봉급이 보장되어 있었으며, 벤세리우스와 안나는 임마누엘을 기뻐 맞아 주리라는 것은 말할 것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스베덴보리가 그 자리를 굳이 사양해야만 한다고 느꼈다는 사실은, 얼마나 그의 마음이 그가 뽑은 야금학 일에 골몰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대학에는 수학강좌를 담당할 수 있는 뛰어난 분이 많이 계십니다.』고 그는 대답하였다. 지금 저의 관심은 기하학, 야금학, 화학에 있지, 가르치는데 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 일을 통하여 좋은 봉사를 마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팽개치는데 는 변명할 나위가 없습니다.』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거기에다 제게는 당신도 알다시피, 태어나면서 말하는데 는 거리낌이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은사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이 나를 추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그 일은, 광산국이 내게 확실히 봉급을 지불하도록, 지금 폐하에게 제출한 청원이 수리되는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나는 그 일을 끈질기게 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이사회에서 어느 분이 만에 하나라도 나를 추천할 경우, 당신이 딱 잘라서 「아니오」해 주신다면, 나는 그것을 대단한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아울러 나를 그 자리에 알맞은 자로 모두가 생각해 주신데 는,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7월에, 그는 광산 마스터[장(長)]에 맞는 봉급으로서는 8백 다레루를 받고, 나중에는 정규 관리의 봉급인 1200 다레루가 되었다. 『좋은 일을 기다리는 자는 헛되지 않는다는』오래된 스웨덴 속담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하여 스베덴보리가 연구. 여행. 출판 때문에 누려온, 말하자면 한가한 기간은 끝났다. 그가 광산국에서, 다른 임원과 함께 관직을 얻었을 때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달을 비롯하여 경화에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생기 넘치는 관심을 증시(證市)하는 수많은 작은 책들을 - 기계. 날도의 계산. 재정. 난로의 발명. 우주의 구조를 다룬 논문은- 그를 명예롭게 하였다.

 

이러한 경력의 기간은 끝났다. 비록, 그가 뒤에는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치열한 연구와 방대한 저작에 관계하기는 했지만, 다음의 십년동안, 작은 책은 그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국회에 대한 청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앞으로 25년 동안 보낼 공무원 생활에 들어섰다. 거의 60살이 되기까지는 , 그 안에 막대한 휴가의 때를 얻기는 하였지만, 스베덴보리는 모든 사람과 같이 나날의 삶에 무거운 짐을 지고, 명한 것을 행하고, 직장 동료의 시킴을 실행하고, 이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주어진 일을 익힘으로서만 생기는 판단력을 키우면서 날마다의 걸음을 걷고 있었다. 이제는 깊은 만족을 갖고 그가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인생의 가르침』 중의 하나『당신의 직업에서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행하고, 모든 일에서 당신 스스로를 사회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게 하라』를 그 스스로 지켜 나아갔다.*

 

* 스베덴보리가 다음의 것을 그의 인생의 가르침(人生)으로 삼았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1)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깊이 생각할 것.

(2)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몸을 맡기고, 그것에 만족할 것.

(3) 언제나 예의범절을 지켜 양심을 맑게 가질 것.

(4) 명을 받은 일에 복종하고, 제가 맡은 일을 충실히 실행하고, 힘을 다하여서 저 자신이 사회에 쓸모 있는 자가 되게 할 것.

 

 

1724년 [34세]에, 스베덴보리는 , 외가의 큰어머니요, 악스말 철공장의 4/5를 갖고 있는 브리타 베엠의 소송사건에 휘말려 들었다. 그 사건은 광산국의 결재에 맡겨진 것이지만, 그것은 얼거리[기구(機構)]의 사건 처리를 큰어머니의 바탕(기질)뿐만 아니라, 감사관의 바탕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는 가까운 친척에게서, 그 철공장의 공동소유 중에서 제 몫을 받는데 필요한 결정을 마쳤기 때문에, 여름동안 악스말을 찾았다. 공장은 1721년[33세] 러시아 군에게 철저하게 파괴되어서, 스베덴보리는 새 화로를 건설하려고, 구리 2천다레루를 기증했는데, 그것은 그가 부담할 비용을 초과하였다. 집, 풀밭 따위는 두 사람의 소유자 사이에 나누어져 있어서, 두 사람의 지배인은 제각기 그 저택에 제가 쓸 방을 두었다.

 

 

스베덴보리가 스톡홀름에 돌아오니, 그의 지배인인 요한 린드보옴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거기에는 베엠 마님의 지배인, 발스트렘이 무리하게도, 자기를 용광로의 공동사용에서 따돌렸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나는 막대한 숯의 손실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의 쇳돌을 녹이기 위하여 그 화로를 쓸 수 없습니다. 그것을 새로 달구는 데는 열흘 또는 열이틀이 걸려서, 숯의 당치 않은 낭비를 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곧 큰 어머니에게 친절한 편지를 써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당신이 스톡홀름에 돌아왔을 때에, 그 일을, 말을 나누어 조용히 화해하고 싶다고, 글을 보냈다.

 

 

그는 그 편지에서, 나는 지금까지 브리타 큰어머님께서 이치에 어긋나게 한 일은 한 번도 모릅니다. 는 말로 맺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배반되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광산국에 제출하였다.

 

 

브리타 베엠의 지배인은 광산국에서 보낸 편지에 대답하기를, 나는 주인의 명령을 따라서 행할 뿐입니다 라고 해명하였다. 그리하면서도 그는, 감사관 스베덴보리의 사용자와는 아무것도 공유하는 것이 없기를 세차게 요구했다.

 

 

스베덴보리는 대답하기를, 만약에 내가 그 공동의 쇳돌녹이는 일에서 제외가 된다면, 쇳돌과 숯의 손실을 요구할 뜻임을 말했다. 그 일은 스베덴보리가 이겨서, 브리타 큰어머니는 분한 맘을 풀길이 없었다.

 

 

베엠 마님은 그 비난에 대답하면서, 스베덴보리를, 당신은 린드보옴이, 당해낼 수 없도록 거칠고 사나워서, 이 사내와는 누구도, 어떤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양심은 알고 있겠죠, 라고 비난하고 있다. 어느 날, 그는, 내가 부리는 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욕을 하고, 거기에다 을러대기도 했습니다. 그 놈은 깡패요, 성급한 놈입니다. 나는 이런 사내를 피하려고 하면서도, 그래도 로를 덥히려고 숯의 4/5를 기부하는, 참으로 이치에 맞는 편의를 제공하는데도, 내게 못마땅한 것이 있느냐고, 그 여자는 대들고 있다. 내가 부리는 사람들은, 그 사내가 죽이지는 않을까 겁을 내어, 그와 함께 일해야만 한다면, 나를 내보내 주세요 하면서, 나를 괴롭힙니다. 누구든지, 그와 함께 일해야만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혜택은 전혀 내릴 리가 없습니다.

 

 

이런 비난에 스베덴보리는 대답하기를, 그 일은, 지금 문제가 된 요점에 대한 대답이 아닙니다. 린드보옴 개인의 성격은, 이 일에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소송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화합을 바라는데, 시기와 불친절 말고는 얻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정성을 다한 편지의 답장은, 내가 그렇게도 올바른 귀부인에게서는 바라지도 않던 말씀이었습니다.』린드보옴은 예순 살이고, 일의 분별도 잘 하고, 경험을 쌓은 전무가요, 뛰어난 장부계이며, 매우 유능한 용광로와 괴철로(塊鐵爐)의 관리인이요, 그에게 부정(不正)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아마, 좀 성급하였을 것이지만, 매우 존경을 받고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남에게서 비난을 받습니다. 그가 모든 일에서 양보만 했다면, 칭찬을 받았겠죠. 2-30이나 되는 소유자가 한 용광로를 함께 가진 광산이 더러 있지만, 아직까지 그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용광로를 함께 쓰는 것을 싫다고 한 일을 아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만약에 내가 이 일을 제철인 에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제 평생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심히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브리타 베엠은 몹시 분해서, 내가 재판관에게 하소연 하는 것은, 나무나 돌, 또는 넋의 빈 껍질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변덕과 욕심이 센 사람입니다 고 되받았다. 이 일은 마침내, 2월 25일, 광산국이 베엠 마님은, 마님 자신의 재료를 써서, 처음 네 번 계속 용광로를 쓰는 것은 좋지만, 스베덴보리가 부리는 사람이 다루는 다섯 번째의 제련은, 그 용광로를 달군 그대로 두어야만 하고, 스베덴보리가 부리는 사람도 꼭 같이 자기 재료를 써서 지배인 두 사람에 관해서는 『만약에 이 일을 하는 동안, 한편이 다른 편에게 말로나 행동으로 치욕을 준다면, 그 사람은 은 백 다레루를 벌금으로 내야한다.』

 

 

뜻 밖에, 스베덴보리가 분명히 유감으로 생각한 것에는, 베엠 마님이 거의 잇달아서 다시, 이번에는 지방 재판소에 새로 소송을 걸었는데, 그것은 스베덴보리가 땅의 분할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생각은 브리타 큰어머니가 제 머리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한 것 같은데, 왜냐하면, 큰어머니는『성질이 어질고, 이지적인 분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베덴보리가 사촌형제이며, 광산국의 일벗이기도 한 라루스 벤세르쉐르나를 의심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어쨌든 그 후 20년을 지나서 벤세르쉐르나가 큰어머니 뒤에서 끈으로 조종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 재판은 얼마 동안 행하여 졌지만, 마침내, 베엠 마님과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져서 소송은 취하되고, 스베덴보리가 큰어머니의 사람됨에 대하여 품고 있던 좋은 생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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