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사람은 그의 내적인 것의 측면에 관해서는 죽을 수 없도록 창조 되었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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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그의 내적인 것의 측면에 관해서는 죽을 수 없도록 창조 되었다.

 

사람은 그의 내적인 것의 측면에 관해서는 죽을 수 없도록 창조 되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결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결합은 영원히 사는 것이다.

 

출생한 모든 사람 안에는 이 내적인 것이 있다.

그의 외적인 것은, 그것에 의하여 그가 믿음과 사랑에 속한 것들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내적인 것에 속하기 위한 방편이다.

내적인 것은 "영혼(the soul)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외적인 것은 "육신(the body)

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운반하는 외적인 것은 이 세상의 씀씀이에 맞게 조절 되어 있다. 이 외적인 것은 사람이 죽을 때 떨어져 남는다. 그러나 저 세상의 씀씀이에 맞게

조절된 외적인 것은 죽지 않는다. 후자적인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과 함께

"영(the spirit)"라 하는데 만약에 그 사람이 이세상에서 선하다면 선한 영이나 천사가 되고, 만약에 그가 악하다면 악한 영이 된다.

 

저 세상에서 사람의 영은 이 세상의 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인간의 형체로 보인다.

그리고 그 영은 또한 이 세상에서와 같이,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능력이나 역량을 향유하고 있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와 같이, 생각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모든 능력이나 역량을 부여 받는다.

한마디로 그가 이 세상에서 감싸졌던 조잡한 육신으로 감싸져 있지 않았다는 것만

제외하면 개별적인 측면이나 전체적인 측면에서 한 사람이다.

이것은 그가 죽었을 때에 뒤에 남는 것이고, 또한 그는 그것을 다시 찾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뜻하는 삶(=생명)의 계속이다.

사람들이 이른바 이 세상에 있는 가시적인 것들이 소멸하는 것을 가리키는 최후의 심판까지 그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을 것이고 믿는 이유는, 그들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감관적인 사람은 진정한 생명 자체를 육신에 두기 때문이고, 그리고 만약에 이와 같이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사람에게 있는 것을 모두 끝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사랑에 속한 생명이고, 그리고 그의 믿음에 속한 생명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류는 이 세상에서 그의 생애를 보내는 동안의 그의 사랑이었고, 그의 믿음 이었고, 그의 생명은 영원히 남는다.

지옥에 속한 생명은 다른 모든 것에 비하여 자기 자신이나 세상을 사랑한 자들이 맞는 것이다. 그리고 천계에 속한 생명은 모든 것들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맞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믿음을 가진 자들이지만, 그러나 전자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 들이다.

천계에 속한 생명을 바로 영생이라고 불리우는 것이고, 지옥에 속한 생명은 영적인 죽음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마태복음22:32)

 

라고 언급된 것과 같이 성경 말씀은 사람은 죽은 뒤에도 산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성경은 나사로는 죽은 뒤에 천계에 올려 졌지만 부자는 지옥에 보내 졌다고

가리치고 (누가복음 16:22,23)있고,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거기에 있다(마태복음8:11, 22:32. 누가복음16:23-25,29)고 가르치고,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강도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누가복음23:43) 말씀하셨다고 가르친다. 이 밖에도 여러 장들이 있겠다. (10591-10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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