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구원받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야 하고, 그리고 회개하여야 한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3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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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야 하고,

그리고 회개하여야 한다.

 

 

구원받기를 열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야 하고,

그리고 회개하여야 한다.

 

죄를 고백하는 것은, 모든 악들을 속속들이 숙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악들을 자기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을 시인한다는 것을, 그리고 죄인이라고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정죄, 저주한다는 것 등등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일들을 행하였을 때 그것이 바로 죄들을 고백하는 것이다.

 

회개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와 같이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한 뒤, 그리고 겸손한 심령으로부터 그것들의 용서를 위하여 간곡한 애원(=기원. 哀願)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단절하는 것이고, 그리고 믿음에 속한 계명들에 따라서 새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 등이다.

 

자기 자신이 모든 다른 사람들과 꼭 같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그리고 온갖 악들에 속한 죄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예의검토하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하면 자신의 죄악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고백은 하였지만, 그러나 회개에 속한 고백은 성취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뒤에 그 사람은 종전에 산 것과 꼭 같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믿음에 속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매일 매일 회개를 행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것들에게서 지키고, 보호하고,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도움을 주님에게 간구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서는 계속해서 타락하지만, 그러나 사람은 주님에 의하여 계속해서 소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열망을 가지고 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타락한다. 그리고 그가 악에 대해서 저항할 때,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것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할 때 사람은 주님에 의하여 소생한다. 이러한 상태가 선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있는 상태다. 그러나 그들이 악 안에 있다면 계속해서 타락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계속해서 주님에 의하여 올리어지고,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들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매우 비참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그리고 또한 그들의 모든 힘을 다하여 자기 자신들로부터 그들이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실은 그들을 보다 덜 비참한 지옥으로 올리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회개는 자유의 상태에서 행해질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억압된 상태에서 행해졌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억압된 상태란 곧 와병의 상태이고, 불행에서 비롯된 마음의 낙담의 상태이고, 절박한 죽음의 직면상태를 가리킨다. 한마디로 말하면 건전한 이성에 속한 선용을 제거하는 모든 공포의 상태를 가리킨다. 억압의 상태에 있는 악한 사람이 회개를 약속하고, 선한 일을 행할 것을 약속하였을 때, 그리고 그가 자유의 상태에 있게 들어가게 되면, 그는 악에 속한 그의 종전의 삶의 상태에 들어게 된다. 그러나 선한 사람의 경우는 이와 같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서 이와 같은 상태는 그가 승리한 시험들에 속한 상태들이기 때문이다.

 

삶에 속한 회개가 아니고, 입술에 속한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온갖 죄악들은 입술에 속한 회개를 통하여 용서되지 않고, 오히려 삶에 속한 회개를 통하여 용서된다. 주님에 의하여 사람은 계속해서 죄악들의 용서를 받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자비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악들은 사람에게 밀착되어 있고,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것들이 모두 용서받는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는 믿음에 속한 계명들에 일치하는 삶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사람에게서 죄악들이 제거되지 않는다. 그가 이런 계명들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에 비례하여 그의 죄악들은 제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죄악들이 제거되는 것에 비례하여 그들은 용서를 받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사람을 악으로부터 제재하시기 때문이고, 그리고 사람을 선 안에 두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는 저 세상에서 악에서부터 사람을 가능한 한 억제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신을 입은 삶에서와 꼭 같이 사람은 저 세상에서 악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 때, 선 안에 있을 수 있는 한, 육신을 입은 삶에서와 같이, 그는 정동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을 행한다. 이러한 내용은 죄악에 대한용서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고,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온갖 죄악들이 이 밖의 다른 방법이나 길에서 용서받는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예의 검토하고, 그리고 자신의 죄악들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일을 행한 뒤, 그 사람은 반드시 그의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변함없이 선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에 그 뒤 그가 악에 속한 그의 예전의 삶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리고 그것을 얼싸 안는다면, 그는 신성모독을 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는 악을 선에 결합시켰고,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그의 예전의 상태에 비하여 더 나쁘게 된 상태를 만든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일치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악한 귀신이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쉴 곳을 찾아서, 물 없는 곳을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하고 말한 후에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있고, 말끔히 청소되어 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귀신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마태 12:43-45) (8387-8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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