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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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속한 모든 것은 선과 진리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1 2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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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속한 모든 것은 선과 진리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선과 진리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선과 진리에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신령질서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것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선은 생산하는 자체이고, 진리는 그것이 생산하게 하는 수단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애나 믿음이라고 부르는 영적인 선과 진리의 경우가 어떠한 것인지를 잘 입증해 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에 속한 모든 것들은 이것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은 그것들 안에 교회에 속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것 안에 이 양자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은 그 어떤 열매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애나 믿음에 속한 선을 전혀 생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기에는 두 힘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 하나는 능동적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동적이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가 없으면 전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이런 힘들, 즉 생명들은 교회에 속한 사람 안에 있는 인애와 믿음이다.

 

교회에 속한 첫째는 선이고, 둘째는 진리다. 또는 교회에 속한 첫째는 인애이고, 둘째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교리에 속한 진리는 선한 삶의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것들이 존재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것이 바로 첫째다.

 

사람 안에서 인애에 속한 선과 믿음에 속한 진리의 결합에 관한 관계는 이러하다. 인애에 속한 선은 영혼(soul)을 통하여 사람 속으로 들어오고, 그러나 믿음에 속한 진리는 청각(순종)을 통하여 들어온다. 전자는 주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입류하지만, 후자는 말씀(성언)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입류한다. 따라서 인애의 선이 들어오는 방법을 내적인 길이라고 부르고, 믿음의 진리가 들어오는 방법을 외적인 길이라고 부른다. 내적인 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은 지각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명확하게 감관에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외적인 길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은 지각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명확하게 감관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은 믿음의 덕으로 돌린다. 그렇지만 중생한 사람의 경우는 이와는 다른데, 인애에 속한 선은 명확하게 지각한다.

 

인애의 선과 믿음의 진리의 결합은 사람의 내면적인 것들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님에게서 입류하는 선 자체는 거기에 있는 진리에 채택되고, 그리고 그것을 자기 자체에 전유시킨다. 그것에 의하여 사람에게서 선은 선이 되게 하고, 진리는 진리가 되게 하고, 인애는 인애가 되게 하고, 믿음은 믿음이 되게 한다. 이 결합이 없다면, 인애는 인애가 아니고, 다만 그것은 자연적인 착함(goodness)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합이 없다면 믿음은 믿음이 아니고, 그저 단순한 믿음에 속한 것들의 기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것은 재물이나 명예를 얻기 위한 그런 것에 불과한 종지 일 뿐이다.

 

진리가 선과 결합하였을 경우, 그것은 더 이상 진리라고 부르지 않고 선이라고 부르며, 믿음이 인애와 결합하였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인애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 때 그 사람은 진리를 원하고, 행하며,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고 행한 것을 선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인애의 선과 믿음의 진리의 결합에 관하여 더 상세하게 말하면 이러하다. 이 선은 그것의 성질(=본성)을 진리에서 취하고, 진리는 그 자체의 본질을 선에서 취한다. 여기에서 얻는 결론은 선의 성질은 그것과 결합된 진리들에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은, 만약에 그것과 결합한 진리가 순수한 것이라면, 순수한 것이 된다. 믿음의 순수한 진리는 교회 안에서 가능 하지만, 그러나 교회 밖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말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애에 속한 선은 그것의 성질을 풍부한 믿음에 속한 진리에서 받고, 마찬가지로 전자의 진리와의 상호 결합에서 취한다. 사람에게서 영적인 선은 이와 같이 형성된다.

 

영적인 선과 자연적인 선 사이에 명확한 분별이 필히 있어야만 하겠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영적인 선은 그 자체의 성질을, 그들의 믿음에 속한 진리들의 넉넉함과 그들의 관계에서 취하지만, 그러나 자연적인 선은 사람과 함께 태어나고, 그리고 불행이나 질병들과 같은 그런 사건들에 의하여 일어난다. 자연적인 선은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지만, 영적인 선은 모두를 구원한다. 그 이유는, 믿음에 속한 진리들을 통하여 형성된 영적인 선은 천계에서, 다시 말하면 주님으로부터 천계를 통하여 입류되는 지평과 같으며, 그것은 사람을 인도하고, 그리고 악으로부터 사람을 떼어 놓고, 그리고 그렇게 한 뒤에는 사람을 천계로 들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적인 선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선 안에 있는 자들은, 만약에 거짓이 진리의 형체로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마치 진리에 의한 것과 꼭 같이, 거짓에 의하여 아주 쉽게 감동되어 넋을 잃고 말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만약에 악이 선처럼 등장한다면, 마치 선에 의한 것과 같이, 악에 의하여 아주 쉽게 따라간다. 그들은 마치 바람결에 나는 깃털과 같기 때문이다.

 

믿음에 속한 것이라고, 그리고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뢰의 확신은 영적인 확신이나, 신뢰가 아니고, 자연적인 그런 것이다. 영적인 확신이나 신뢰는 사랑에 속한 선에서 그것의 본질이나 생명을 취한다. 그러나 사랑의 선으로부터 분열된 믿음의 진리로부터는 그것들을 취하지 않는다. 분열된 믿음의 확신은 생명이 없는 죽은 것이고, 따라서 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참된 확신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삶이 어떠한 것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공로를 통해서 구원 받는다는 확신은 진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7752-7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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