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자기사랑(자아애)과 세상사랑(세간애)이 사람에게서 지옥을 이루는 이 사랑의 성질에 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1 20:32:00
  • hit160
  • vote7
  • 119.207.135.45

자기사랑(자아애)과 세상사랑(세간애)이 사람에게서 지옥을 이루는 이 사랑의 성질에 대하여

 

자기사랑(자아애)과 세상사랑(세간애)이 사람에게서 지옥을 이룬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지금은 이들 사랑들의 성질에 관해서 언급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그런 사랑들 안에 있는지의 여부를 알게 하기 위하여, 결과적으로는 사람 안에 지옥과 주님나라가 있는지 여부에 관해서 밝히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 자신 안에는 지옥도, 주님나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누가복음서 17장 21절에서 가르치셨고, 결과적으로 역시 지옥도 그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것도 가르치셨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할 때, 그가 이웃을 존중하지 않고, 따라서 사회도 존중하지 않고, 더욱이 주님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오직 자기 자신이나, 자기 자신에게 속한 자들만을 염두에 둘 때,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위해서 모든 것들을 행할 때, 그리고 만약에 사회나 이웃을 위해서 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순히 체면상 행한다면 자기사랑은 한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자기사랑(자아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그 사람에 속한 자들을 위해서”라고 언급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는 이들과 함께 하고, 그리고 이들은 그 사람과 함께 하고, 그래서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자기 부인. 자기 자녀. 손자. 사위들이나 며느리들을 위해서 한다면 그는 그것을 자신을 목적해서 한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그의 식솔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 자기 친척들이나, 또는 그의 사랑을 좋아하고, 그것에 의하여 그와 결합한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한다는 경우도 꼭 같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결합에 의하여 그들은 그 사람과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자신들을 존중한 것이고,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그를 존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사랑에 빠져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 사람은 이웃사랑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멀리 떼어 놓는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자기사랑 안에 빠져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주님나라에서 멀리 옮기는 것이다. 이상에서 뒤이어지는 결론은, 사람이 자기사랑에 빠져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는 지옥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에는 자기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비교하여 이웃을 경멸하고, 그리고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를 좋아하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을 그의 원수로 대하는 사람은 자기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의 이웃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은 자기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또한 그 사람에 대하여 복수심을 불태우고, 그의 멸망을 열망하는 사람은 역시 자기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종국에 이런 작자들은 그들의 이웃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기를 좋아하고, 만약에 그 작자들이 또한 간통 자들 이라면 그들은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자가 될 것이다.

 

이런 인물들이 이런 것들에게서 느끼는 쾌락은 바로 자기사랑에 속한 쾌락이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이 쾌락은 지옥적인 쾌락이다. 사랑에 일치하는 모든 것은 유쾌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됨됨이(본성)는 그 기쁨이나 쾌락에서 잘 알 수 있다.

 

하나의 검사수단으로서 지금 기술된 내용에서(7370항 참조)우리는 자기사랑에 빠진 자가 누구인지 잘 알 수 있겠다. 그것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든, 또는 겸손한 것이든, 그것들이 겉보기에 어떻게 보이느냐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내면적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고, 그리고 오늘날 내면적인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숨겨져 있고, 그리고 외면적인 사람은 사회나 이웃에 대한 사랑을, 따라서 그와 반대되는 것들을 어떻게 보는지를 훈련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 역시 자기나 세상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할 때 그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제외하고서는 아무것도 중하게 여기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으며, 또한 이 일이 그의 이웃이나 사회에 대하여 해가 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세상사랑(세간애)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세상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교묘한 술책들에 의하여 다른 사람의 재물을 스스로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세상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욱이 교활함이나 사기 따위로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은 모두가 세상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랑에 빠져 있는 작자들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몹시 시샘을 하고, 턱없이 탐을 낸다. 그들은 법률을 두려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들을 취하고, 심지어는 강도질을 통해서 그것들을 취하기도 한다.

 

이들 두 사랑들은, 구속력이 풀리는 것에 비례하여 증대하고, 그리고 그 사람이 그것들 가운데 묶여 있는 것에 비례하여, 그리고 종국에는 그것들은 한계를 넘어서까지 증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있는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것들, 심지어 땅 끝에 이르기까지 지배하기를 열망한다. 아니, 이런 사랑들은, 만약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면 심지어 우주의 하나님에게까지도 넘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사랑들에 빠져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기어 올라가, 하나님 대신에 예배받기를 갈망하는 자리에까지 올라갈 것이다. 이것은 “루시퍼”(Lucifer)에 관해서 이사야서에 기술된 것과 일치하는데, “루시퍼”는 이런 사랑들 안에 있는 자들을 뜻하고, 그리고 “바벨”이라고 호칭되는 자들을 뜻한다이사야서의 말씀에서.

 

내가 평소에 늘 장담하더니 ‘내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겠다. 하나님의 별들보다 더 높은 곳에 나의 보좌를 두고, 저 멀리 북쪽 끝에 있는 산 위에, 신들이 모여 있는 그 산 위에 자리 잡고 앉겠다. 내가 저 구름 위에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 하더니, 그렇게 말하던 네가 스올로, 땅 밑 구덩이에서도 맨 밑바닥으로 떨어졌구나.(이사야14:13-15)

 

이상에서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들 두 사랑들이 모든 악들의 근원들이다 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웃사랑과 주님사랑에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주님사랑과 이웃사랑이 다스리는 곳인 주님나라에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랑들, 다시 말하면 자기사랑(자아애)이나 세상사랑(세간애)은 사람에게서 지옥을 이루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랑들이 지옥에서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나라를 위하여 영예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랑에 빠져 있지 않는다. 그리고 재물을 목적해서 재물을 열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나 가족들의 삶의 필수적인 것들을 열망하는 자들은, 그리고 재물의 선용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그것의 선용을 목적해서 재물을 열망하는 자들은 이런 사랑들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영예나 부유함은 복리와 복지를 나누어주는 수단들일 뿐인 것이다. 7366-7377

게시글 공유 URL복사 cy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