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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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이 사람과 더불어 천계(=주님나라)를 이루고, 그리고 악(惡)이 사람과 함께 지옥을 이룬다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1 2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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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이 사람과 더불어 천계(=주님나라)를 이루고, 그리고 악(惡)이 사람과 함께 지옥을 이룬다

 

선(善)이 사람과 더불어 천계(=주님나라)를 이루고, 그리고 악(惡)이 사람과 함께 지옥을 이루기 때문에,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미 설명한 사실은, 선은 주님사랑이나, 이웃사랑에 속한 것이라는 것이고, 그리고 악은 자기사랑이나 세상사랑에 속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랑들로 말미암아, 그리고 오직 이 사랑들에게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령질서에 일치하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선이나 진리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령질서에 어긋나는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악이나 거짓에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신령존재에게서 발출한 선과 진리가 질서를 형성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질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주님사랑에 속한 선을 “천적인 선”(celestial good)이라고 부르고, 이웃사랑인 인애에 속한 선을 “영적인 선”(spiritual good)이라고 부른다. 주님사랑에 속한 천적인 선과, 이웃사랑인 인애에 속한 영적인 선 사이에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크게 다른 지에 관해서 아래에서 설명 할 것이다.

 

주님사랑에 속한 천적인 선의 교리는 가장 넓고, 충분하고(the most ample), 동시에 가장 신비스럽지만(the mast secret),그러나 이웃사랑인 인애에 속한 영적인 선은 역시 넓고, 충분하고, 신비스럽지만, 그러나 주님사랑에 속한 교리인 천적인 선의 교리에 비하면 그와 같이 넓고, 충분하지도 않고, 또 신비스럽지도 않다. 인애의 교리가 넓고, 충분하다는 것은, 인애가 서로 같지 않고, 그리고 이웃 역시 서로가 같지 않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인애의 교리가 매우 넓고, 충분하기 때문에, 고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 인애의 교리는 교회의 진정한 교리 자체이였고, 이웃을 향한 인애를 수많은 등급으로 구분하였고, 그리고 그 등급 역시 다시 세분하였으며, 그리고 그 각각의 등급에 이름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서로 다른 한 등급 안에 있는 이웃에게 인애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인애의 교리를 질서에 맞게, 그리고 역시 구체적인 인애의 실천에 맞게 정돈하였는데, 그와 같은 일들은 이해의 관점에 명확하게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인애를 설천하려고 하는 상대들에게 그들이 부여한 이름들은 아주 많았다. 그들은 어떤 상대들을 “장님”(blind)이라고 불렀고, 어떤 상대들은 절음발이(lame)라고, 어떤 상대들은 불구자(maimed))라고, 어떤 상대들은 가난한 자(poor)또는 비참한 자(miserable)나, 고통 받는 자(afflicted)라고 하였고, 어떤 상대들은 고아들(orphans)이라고 하고, 어떤 상대들은 과부들(widows)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들에게 먹을거리를 주어야 하는 자들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함께 있어야 하는 나그네나, 입을 것을 주어야 하는 벌거벗은 자나, 그들이 돌보아야 하는 몸이 아픈 자, 그들이 찾아가야 하는 감옥에 갇힌 자라고 불렀다(이들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4954-4959항을 참조하십시오).

 

이와 같은 이름들은 천계로부터 그 교회에 속한 고대 사람들에게 주어졌으며, 그와 같이 명명된 자들에 의하여 그들은 영적으로 그들이 됨됨이(性稟)를 이해하였다. 그들의 인애의 교리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 각각에 대한 인애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얻는 것은, 이와 같은 동일한 이름들이 성경에 있고, 그리고 그 이름들은 영적인 뜻으로 그러한 인물을 뜻한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성경말씀(聖言. the Word)은 주님사랑의 가르침(敎理)이나 이웃사랑인 인애의 가르침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셨다. 마태복음서의 말씀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뜻이 달려 있다.”(마태22:37-40)

 

“율법과 예언자들”은 전 성언(全 聖言. the whole Word)을 뜻합니다.

 

이와 같은 동일한 이름들이 성경에 있는 이유는, 외적인 예배(external worship)에 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자들에게 인애를 실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박한 사람(the simple)은 성경말씀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고, 현명한 사람은 현명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소박한 사람은 인애에 속한 외적인 것들을 통하여 그것의 내적인 것들이 그들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7255-7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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