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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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향한 사랑(=인애. 이웃사랑)이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21 2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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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향한 사랑(=인애. 이웃사랑)이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웃을 향한 사랑(=인애. 이웃사랑)이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지 못한다면, 영적인 뜻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자기사랑(자아애. the love of self)이나 세상사랑(세간애. the love of world)을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선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리고 선 안에 있지 않다면 믿음에 속한 진리가 무엇인지 내적인 시인(內的是認. inward acknowledgment)으로부터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역시 악이 무엇인지 모르면 어느 누구도 거짓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만약에 사람이 이 두 사랑들 - 주님사랑과 이웃사랑 - 에서부터 선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리고 선에서 비롯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예의검토(銳意檢討)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두 사랑들 - 자기사랑과 세상사랑 -에서 비롯된 악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리고 악에서 비롯된 거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예의 검토할 수 없다.

 

사람은 두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이해(理解. understanding)라고 부르고, 하나는 의지(意志. will)라고 부른다. 사람에게 주어진 의지는 사랑에 속한 선을 목적한 것이고, 사람에게 주어진 이해는 믿음에 속한 진리를 목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에 속한 선은 의지와 관계를 가지고 있고, 믿음에 속한 진리는 이해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기능은 후자와 함께 아주 놀라운 방법으로 교류하고 있다. 그것들은 스스로 선 안에 있는 자들이나, 그것에서 비롯된 진리 안에 있는 자들과 서로 잘 결합을 한다. 그리고 역시 그것들은 악 안에 있는 자들이나, 그것에서 비롯된 거짓 안에 있는 자들과도 서로 잘 결한다. 어느 부류에 있어서도 이 두 기능들은 하나의 마음을 형성한다. 그러나 믿음의 측면에서 진리 안에 있는 자들이나, 삶의 측면에서 악 안에 있는 자들에게서는 그와 같은 결합은 있을수 없다. 그리고 믿음의 측면에서 거짓 안에 있고, 삶의 측면에서 겉꾸밈의 선(apparent good)안에 있는 자들에게서도 역시 그와 같은 결합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그의 마음을 둘로 나누도록 허락되지 않았고, 이 두 기능들을 서로서로 단절하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진리를 이해하고 말하는 것과, 악을 의도하고, 행하는 것을 분리하거나, 단절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전자의 기능은 천계를 우러르고 향하지만, 후자의 기능은 지옥을 우러르고 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이 둘 사이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지하여야 할 것은 의지가 그 사람을 감동시킬 때 이해는 그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밝히 알 수 있는 것은, 믿음과 사랑의 경우가 어떠한지, 그리고 만약에 그것들이 서로 분리된다면 사람의 상태가 어떠할 것인지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그 사람 안에 주님나라가 있는지, 아니면 지옥이 있는지를 안다는 것 이상으로 더 필수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전자나, 후자 안에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바르게 알게 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것은 사람은 반드시 선이 무엇인지, 또는 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은 주님나라를 이루고, 악은 지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애에 속한 교리는 이 양자 - 주님나라와 지옥 - 에 관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언급되었는데, 이 말은 곧 주님을 향한 사랑을 뜻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聖父. the Father)께서 그분 안에 계시고(요한 14: 9-11). 그리고 성령의 거룩함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기 때문이다(요한 16:13-15). 7178-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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