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사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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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누구인지에 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19 1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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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이 누구인지에 관하여

 

 

이웃에 관해서 보다 상세히 설명해야 겠다. 그 이유는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실천하여야 할 인애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모든 사람이 다 이웃이지만, 그러나 또한 어떤 사람과 같이 이웃이 아닌 사람이 있다는 것과, 또 선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 비하여 훌륭한 이웃이라는 것, 따라서 사랑 받아야 할 것은 사람 안에 있는 선이라는 것, 그리고 왜냐하면 선이 사랑을 받을 때 주님께서 사랑을 받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선은 오직 주님에게서 비롯되고, 주님은 오직 선 안에 존재하시고, 또 주님은 선 자체이시기 때문이라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사람은 개별적인 것 안에 있는 이웃일 뿐아니라, 사람은 복수적인 것들 안에 있는 이웃이다. 왜냐하면 한 사회는, 그것이 크든 작든, 우리의 이웃이고, 또 우리의 국가도 이웃이고, 교회도 이웃이고, 주님의 나라 역시 이웃이고, 그러므로 그 보다 훨씬 높은 주님께서도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선으로 말미암아 이익을 향유 할 수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또한 한 단계 높은 계도의 이웃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회에 속한 한 사회는 개인 한 사람의 계도에 비하면 보다 높은 계도에 있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국가는 한 사회보다는 더 높은 계도 안에 있고, 또 이보다 더 높은 계도 안에는 교회가 있으며, 그 보다 더 높은 계도 안에는 주님의 나라가 있다 . 그러나 가장 높은 계도 안에 계신 주님도 우리의 이웃이다. 이와 같은 상승계도는 사닥다리의 층계와 같은데, 그 꼭대기에는 주님이 계신다.

 

 

하나의 사회는, 수많은 개인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개별적인 사람보다는 큰 이웃이다. 인애는 한 개인들을 향해 실천되듯이 사회를 향해서도, 다시 말하면, 그것 안에 있는 선의 성질이나 내용에 따라서 인애는 실천되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사람들의 사회를 향해 행해지는 방법과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사회를 향해 행해지는 인애의 실천 방법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국가는 한 사회보다는 더 큰 이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마치 우리의 부모와 같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사람은 바로 국가에 태어나고, 국가는 그 사람을 양육하고, 모든 위험에서부터 그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는, 그것의 필요에 따라서, 사랑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을 향유한다. 그 필요성의 주된 고려사항은 국가의 지속이고, 또 국가의 공민적인 삶과, 또 영적인 생명이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선한 뜻에서부터 국가에 대해 선을 실천해야 할 것이며, 또 저 세상에서는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는 주님의 나라가 바로 그 사람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그분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의 전부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래 “주님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은 그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 안에 있는 주님에게서 비롯된 선과 진리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우리의 국가보다 더 크고 높은 이웃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존경하고, 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과 영원한 생명을 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이 선으로 나아갈 때, 사람을 보살피고 사랑하며, 그리고 인애로 말미암아 이런 것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핀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하고,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속한 행복을 갈망하고, 원하기 때문이다. 선은 그 나라에 있는 누구에게나 주입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진리는 그 나라를 섬기는 자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에 의하지 않고서 누구에게나 주입될 수 없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것을 행한다면, 이단사설들만 창궐하고,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산산이 쪼개짐을 자초할 것입니다. 인애가 만약 교회에 속한 진리에 의해서 실천되고, 구체적으로 행해진다면, 이웃은 선으로 인도된다. 만약 선에서부터 멀리 빗나가게 한 어떤 것을 교회에서 진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언급할 가지조차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나 제일 먼저는 교회에 속한 교리에서 진리를 스스로 터득하여야 하고, 그 뒤에는 주님의 말씀에서부터 진리를 간직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에 속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나라는 사람이 태어나는 교회보다도 더 크고 높은 계도 안에 있는 이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나라는, 지상에서든 천계에서든, 선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의 나라는 복합채로 그 나라의 모든 성품으로서의 선이기 때문이다. 그 때 이 선은 사랑을 받고, 또 선 안에 있는 사람 역시 사랑을 받는다. 그러므로 한 복합체 안에 있는 모든 선으로서의 전체는 첫 번째 계도 안에 있는 이웃이고, 또 앞에서 여러 장들의 말미에 다루어진 최대인간 인데, 이 최대인간이 바로 주님 자신에 속한 표징적인 형상을 가리킨다. 이 최대인간, 다시 말하면, 주님에게서 비롯된 최대인간을 통하여, 즉 주님의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사람들인 그들의 가장 깊은 애정에서부터 선이 실천될 때, 주님의 나라는 사랑을 받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이웃의 계도들인데, 이 계도에 따라서 인애는 위로 상승한다. 그러나 이들 계도는 점진적인 질서 안에 있다. 즉 그 점진적인 계도 안에는 선래적계도, 또는 보다 높은 계도는 언제나 후래적계도, 또는 보다 낮은 계도에 우선한다. 주님께서 가장 높은 최고의 계도에 계시기 때문에,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든 계도 안에서 각각의 것들이 지향하는 목적으로서 주목되고, 존경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 위의 위이시고, 모든 것들 보다 으뜸으로 사랑을 받으셔야 한다.(6818-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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