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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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생과정에 있으면 그는 주님에 의하여 일종의 중간적인 선 안에 머물러 있다.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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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생과정에 있으면 그는 주님에 의하여 일종의 중간적인 선 안에 머물러 있다.

 

 

이 선은 순수한 선들이나 진리들의 도입을 위해 헌신한다. 그러나 이것들이 도입된 뒤에는 이 선은 그것들에서 분리된다. 중생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사람에 관하여 무엇인가를 배운 사람은, 그 새로운 사람, 즉 중생한 사람이, 그 전 사람, 즉 중생하기 전 사람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사람은, 천계적인 기쁨이나, 즐거움을 낳는 영적인 것들이나 천적인 것들에 속한 애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중생 이전의 옛 사람은, 세속적인 또는 세상적인 쾌락이나 향락을 낳는 세속적인 것들이나, 세상적인 것들에 속한 애욕 안에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사람은 천계에 있는 목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옛 사람은, 세상에 있는 목적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명확한 사실은, 새로운 사람은, 옛 사람과 전적을 다르고, 또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옛 사람의 상태에서 새로운 사람의 상태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속한 탐욕이나, 욕망들을 털어버리고, 천계에 속한 애정을 반드시 새로 입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수많은 방법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데, 그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알려져 있고, 그리고 그 방법 중 많은 것들은, 역시 주님에 의하여 천사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것이지만 사람에게 알려진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개별적인 든, 그것들의 대부분은 성경이 속뜻 안에 명료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옛 사람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되어 갈 때, 다시 말하면 사람이 중생과정에 있을 때, 그와 같은 일은 몇몇 사람들이 믿는 것과 같이, 일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수년 동안 여러 과정들을 통해서, 아니 사람은 전 일생동안 심지어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행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탐욕들이나 정욕들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천계적인 애정이 심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가 전에 가지지 못했던 한 생명이 부여되지만, 그것에 관해서 그 사람은 사실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의 상태들이 아주 크게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필수적인 것은, 사람은 일종의 중간적인 선 안에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속한 애정들과 천계에 속한 애정들 양자와 함께, 어울리는 선 안에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사람이 이 중간적인 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천계적인 선들이나 진리들을 승인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은 그 임무를 다하면 그것은 분리되어야만 한다. 이 분리되는 선이 중간적인 선, 또는 매개적인 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선이 자신의 선용의 임무를 수행한 뒤, 그 선은 분리된다는 것 등은 어느 누구가 유아기부터 노년기에까지 겪는 수많은 상태들의 변화에 의하여 설명 될 수 있겠다. 잘 알려진 바는 한 사람의 상태는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따라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잘 알려진 사실은, 사람이 그가 소년기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장난감과 같은 유아기의 상태를 벗는 다는 것이고, 청년기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소년기의 상태를 벗는다는 것이고, 완숙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청년기의 상태를 벗고, 종국에는 노년기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그 상태도 역시 벗는 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가 이런 사실에 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각각의 시기는 그 기쁨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기쁨을 통하여 그 사람은 계속해서 뒤에 이어지는 시기의 기쁨에 인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쁨들은, 그 사람을 거기에서부터 옮기며, 종국에는 노년기의 총명이나 지혜에 속한 기쁨에 까지 옮긴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명확한 사실은, 전자의 것들은, 새로운 시기의 삶의 상태를 입었을 때, 여전히 뒤에 남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기쁨들의 수단들에 불과하다는 것과, 그리고 그 사람이 다음에 이어지는 상태에 들어갔을 때, 이 기쁨들은 남는 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이에 반하여 사람이 중생하는 동안에는 그의 상태는 그의 전 상태와는 전혀 다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떤 자연적인 방법에 의하여 그것에 인도되는 것이 아니고 주님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인도된다.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홀로 장만하시는 중생의 방법들, 즉 중생의 매개체를 제외하면, 따라서 중간적인 선을 제외하면 이 상태에 들어 올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이 자신의 목적들로부터 세상적이고,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로 옮겨지고, 그리고 그 대신에 천계에 속한 목적들의 상태로 옮겨지면, 그 때 이 중간적인 선은 모두가 분리가 된다. 목적으로 이 모든 것을 소유 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것을 사랑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중간적인 선으로부터 분리되어져 가는 과정을 성경에서는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분리 되어져 가나안 땅으로 가는 과정으로 서술하고 있다. 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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