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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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속한 선은 궁극적으로 일이나 행위들에 대응한다.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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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속한 선은 궁극적으로 일이나 행위들에 대응한다.

 

 

왜냐하면 믿음에 속한 선은 일들을 생성하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마치 선을 생각하고, 또 선을 뜻한다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 없으면, 그 존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대응하는 내적인 것이고, 후자는 대응하는 외적인 것이다. 좀더 일들에 관해서 고찰한다면, 만약에 그것들이 믿음에 속한 선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인애에 속한 일들도 아니고, 또한 믿음에 속한 일들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들의 내면적인 것에서 비롯되지 않고, 오히려 생명이 없는 죽은 것에서 비롯되는데, 그런 것들 안에는 물론 선이나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대응한다면, 그 때 그들은 인애에 속한 일들이고, 또한 믿음에 속한 일들이다. 인애에 속한 일들은 마치 그들의 영혼에서 흘러나오듯, 인애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믿음에 속한 일들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인애에 속한 일들은 중생한 사람에게 존재하고, 믿음에 속한 일들은 아직 중생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중생되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존재한다, 이와 같은 경우는 선에 속한 애정이나, 진리에 속한 애정의 경우도 꼭 같다. 왜냐하면 중생한 사람은 선에 속한 애정에서, 따라서 선을 뜻하는 것에서 선을 행하지만, 그러나 중생하려는 사람은 진리에 속한 애정에서 따라서 선을 아는 것에서부터 선을 행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들에 관하여 더 생각한다면, 믿음에 속한 선은, 마치 사람의 의지와 거기에서 파생된 생각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는 것에 비유 될 수 있겠고, 사람의 얼굴이 그의 마음의 형상이다는 것, 즉 한 사람의 얼굴은 곧 그의 의지와, 거기에서 파생된 그의 사상이나 형상이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사람의 뜻이나 생각이, 마치 그것들의 형상 안에서처럼, 그 사람의 안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면, 나타나 보여진 어떤 사실은 그의 뜻도 생각도 아니고, 오히려 위선이요, 사기일 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뜻하고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르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생각이나 뜻에 속한 내면적인 것들에 관해서 보면, 사람의 몸의 모든 행위와도 꼭 같다. 사람의 내적인 것은 행동이나 행동하는 것을 통하여, 그의 외적인 것에 살고 있다. 만약에 행동이나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의 내적인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행동을 유발하는 내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관습이나 습관에서 반복되는 일시적인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일 뿐이다. 또한 그것은 위선이나 사기에서처럼, 무엇인가 꾸며낸 짓이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상에서 볼 때 명확한 사실은 일들, 곧 행위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뒤 이어지는 사실은 믿음에 속한 공언이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한층 더 믿음에 속한 선에 관해서 공언이나 선에 관애서 고백하지만, 이에 반하여 행위들을 부인하고, 더욱이 그 사람이 일들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으며, 더욱이 인애가 철저히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애나 믿음에 속한 일들의 본성이 이러하고, 사람이 선행 안에 있지 않다면, 인애나 믿음 안에는 결코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 때문에 “행위”가 성경말씀에 아주 자주 거론된다.

 

주께서 계획하는 일도 크시고, 실천하는 힘도 강하시며, 사람들으 모든 삶을 감찰하시고, 각자의 행동과 행실의 결실에 따라서 갚아 주신다. (예레미야32:19)

 

또 같은 책에

 

각자 자신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행실을 고치고,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쫒아다지지 말라고 하였다 (예레미야35:15)

 

또 같은 책의 말씀이다.

 

이와 같이 나는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직접 행하고, 저지른 일들을 그대로 갚아 주겠다. (예레미야25:14)

 

호세아서 말씀이다.

 

내가 그 행실대로 벌하고, 한 일을 따라서 갚을 것이다. (호세아4:9)

 

미가서 말씀이다.

 

그들이 살던 땅은 거기에 사는 악들이 죄 때문에, 사막이 되고 말았다. (미가서7:13)

 

또 스가랴서1:1,4,6. 계시록14:13. 20:12,13. 22:12. 요한복음3:19-21.

7:7. 8:39,41.13:17. 마태복음5:16,19. 7:21-23,7:24,26. 16:27.

누가복음13:25-27 등이다.

 

 

이상의 장절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행위들이고, 또 사람을 정죄하는 것도 행위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한 일들을 사람을 구원하고, 악한 일들은 사람을 정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행한 그 행위들에는 언제나 그 사람의 의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을 원하는 선을 행하지만, 그러나 선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제 아무리 그가 선을 원한다고 말해도,그가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아직까지 그는 선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치 나는 그것을 원한다 말하면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꼭 같다. 의지나 뜻이 행위나 일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고 인애가 의지에 속한 것이고, 믿음이 인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아주 명백한 사실은 사람이 선한 일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특히 그 반대의 것들, 즉 악한 일들을 행한다면, 사람 안에 내재해 있는 의지에 속한 것이나, 인애 속한 것이 어떤 것인지,명확하게 안다는 것이다.

 

 

더욱이 명확하게 주지해야 할 사실은 주님이 나라는 한 사람의 안에 있는 행위들의 생명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사람은 중생의 시작 안에 있지만, 그러나 주님 나라가 그 사람 안에 존재 한다면, 중생은 행위들 안에 종결되고, 그리고 그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중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속사람은 그 때 속사람에 대응하는 그의 겉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애나 그것에서 파생된 믿음이 그의 속사람에 속한 것이라면, 그가 행하는 일들은, 그의 겉사람에 속한 것이고, 그러므로 이 경우 그가 행한 일들은 모두가 인애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속사람의 삶은 겉사람의 행위 안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마태복음25:32-46) 선행 외에는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았고, 그리고 오히려 주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사람은영원한 생명에 들어 갈것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영벌에 들어 갈 것이라고 천명하셨다. 이상의 설명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요한 관해서 우리들이 읽는 것들,즉 요한이 예수님의 품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보다 그를 더 사랑하셨다는 것(요한복음13:23,25. 21:20) 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은 선행을 표징하기 때문이다. 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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