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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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중재(중보기도)에 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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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중재(중보기도)에 관하여.
 
모든 사랑 안에는, 결과적을 모든 자비 안에는 중재가 있다. 사랑하고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이 계속해서 조정하고, 중재한다는 것은, 여러 예에서 잘 알 수 있겠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그녀가 다른 자들에 의하여 친절하게 영접, 환영 받기를 희망하고, 그리고 잘 대접 받기를 원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어떤 낱말로 표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결과적을 무언으로 그것들 원하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중재하고, 조정한다.

부모들도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총애에서도 같은 식으로 행동한다. 이웃에 대한 인애 안에 있는 자들도 같은 식으로 행동하고, 자신들의 친구들에 대한 우정 안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알 수 있는 사실은 모든 사랑안에는 변함없이 중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류에 대한 주님의 중재에 관해서도 동일하다. 특히 선이나 믿음의 진리안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그들을 향한 중재는 신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중재는 무한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신령함이 있다. 다시 말하면 무한한 자비가 있다.

주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에게 간구하지 않고, 그리고 중재나 조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행동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그럽게 봐주시고, 계속해서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동정심을 느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주님 자신의 성품에서 행해진다. 왜냐하면 주님과 아버지는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중재"에 대한 보다 더 내면적인 비의는 이런 것이다.
주님에게서 발출한 신령진리가 계속해서 중재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은 신령사랑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그 분은 "신령진리"이셨다. 그러나 그분이 부활하셨을 때, 이 일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주님이 영화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신령선"이셨다.
성경에서 속뜻으로 "아버지"는 "신령선"을 뜻하고, "아들"은 "신령진리"을 뜻한다.
따라서 신령선에서 발출한 신령진리 안에는 계속적인 중재가 내재해 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성자께서 성부에게 간청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중재한다고 말씀에서 언급되어 있는 것이다. 8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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