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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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인하여 행동하고 더 이상 진리로 말미암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8-01-01 0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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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인하여 행동하고 더 이상 진리로 말미암아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하여. 
 
어느 누구나 반드시 인애라고 부르는 기독교인의 선에 의하여 믿음에 속한 진리에 통하여 인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에 속한 진리는 인애가 무엇인지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성질이나 본성도,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자기 자신에게서는 그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이 선을 영접, 수용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따라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러 보겠다.
사람은 반드시 믿음에 속한 교리로 부터,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애가 아니라는 것, 또는 반대급부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도 인애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인애에 속한 업적들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공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등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또한 인애에 속한 선이, 주님에서 온다는 것과, 자기 자신에서 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반다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애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은 이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런 생각에서 볼 때, 꼭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믿음에 속한 진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기독교적인 선에 인도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밝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들의 진리들은 선으로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러나 선은 그것 자체에 진리를 적용하고, 진리들에게 결부 시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에 속한 진리들은 사람의 기억 안에 남아 있는데, 그것은 마치 들판에서 내면적인 시각 아래에 까지 확장하는 것과 같다. 
주님에서 비롯된 이 선은 이런 시각을 통해서 입류하고, 그리고 그것들로 부터 선택하고, 그것 자체와 결합한다. 
그리고 진리들은 그것과 일치한 상태에 있다. 
아래에 놓여 있는 진리들은 위에 있는 선들 안으로 유입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 즉 밑에서 위로 유입하는 것은 질서에 맞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심지어 아래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에 입류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모든 것에서 볼 때, 기독교 적인 선이, 사람이 중생 할 때, 사람에게서 어떻게 태어 나는지 알 수 있고, 그러므로 사람이 중생 되어 있을 때, 사람이 성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진리로 말미암아 행동하지 않고, 선으로 말미암아 행동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겠다.
그것은 곧 선에 의하여 주님께서 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지, 더 이상 진리에 의하여 인도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 인애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은 이 선을 행동하는 애정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계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이와 같이 인도 된다. 왜냐하면 이것이 신령질서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은 말하자면 동시에 그리고 자유로 부터 입류한다. 
 
만약에 그들이 진리로 말미암아 생각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행동하였다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그 때 그들은 어떤 것을 행해야 할 것인지를 아닌지를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은 모든 구체적인 것들 안에 멈추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빛도 어둠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 그들은 그들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들에 일치하여, 행동 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사랑을 선호하는 것들의 유입에 일치하여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이다. 8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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