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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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에 속한 선들에 대하여

  • 관리자 (ecclesias)
  • 2017-12-30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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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에 속한 선들에 대하여

 

 

 

인애에 속한 선들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선들은 선용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리고 그 선용들은 이웃을 위한, 우리의 나라를 위한, 교회를 위한,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더욱이 본질적으로 살펴 본다면, 인애 자체는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그리고 선행(일)이 되기전 까지는 인애가 된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에게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에게 선을 행하는 것, 그리고 마음에서 부터 그것을 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그에 대한 인애에 속한 모든 것들은 바로 그 행위 안에, 또는 그 선행 안에 가득 채워져 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선행들은 그의 인애나 믿음에 속한 모든 것들의 복합체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영적인 선들이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직접적인 실천에 의하여, 선들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용들에 의하여, 선들이 되는 것이다.

 

 

천계에 있는 천사들은 주님에서 비롯된 선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선행을 수행하는 것 이외의 더 다른 것을 갈망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바로 그들의 삶에 속한 진정한 기쁨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축복과 행복을 향유하는 선용들과 일치한다.

그것은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가르치신 것과 같다.

마태복음의 말씀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16:27)

 

 

이 말씀에서 행실은 겉모양으로 그것들이 드러난 그런 행실들을 뜻하지 않고, 그것들이 속모양 안에 있는 그런 것들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그것 안에 담겨져 있는 인애를 뜻한다. 천사들은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선행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의 선행들이 그 사람의 인애와 믿음에 속한 모든 것들의 복합체 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삶이 인애를 인애가 되게 하고, 믿음를 믿음이 되게 하고, 따라서 선을 선이 되게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나머지 제자들 보다, 제자 요한을 더 사랑하셨고, 만찬에서 그분의 가슴에 그는 기대었다. (요21:20) 왜냐하면, 제자 요한은 선들이나, 인애에 속한 선행들을 표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믿음을 표징하는 베드로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가르키는 믿음은 분노를 가지고 말하였다.

"주님 이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믿음이 선행들을 경멸 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들은 주님가까이 있을 것이다는 예언의 말씀은 뜻한다. 어러한 사실은 양들과 염소들에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아주 명백한데, 거기에서 중하게 여기는 것은 선행들 이외의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주님을 배척, 부인할 믿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하였을 때의 "베드로"가 표징한다. 그가 이 짓을 밤에 하였다는 것은 교회의 종말을 뜻한다.

그 때 거기에는 더 이상 그 어떤 인애도 존재하지 않는 때를 가리킨다. 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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