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양과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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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重生)과정에 있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 servant
  • 2017-12-14 2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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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重生)과정에 있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 출생한 사람은 초기의 유아기(乳兒期) 때부터 성경이나 교회에 속한 교리(敎理)적인 것들로부터 믿음에 속한 진리(眞理)가 무엇이고 인애(仁愛)게 속한 선(善)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그러나 그가 장년으로 성장하면, 그는 스스로 그가 배웠던 믿음에 속한 진리들을 확증하거나 아니면 부인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 때 그는 자신의 시각으로 진리들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거나 또는 배척하거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시각으로 시인 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그러하다고 알지 못하는 것은 자기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아기에서 배운 진리들은 사람의 삶에서 최초의 입구 이상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에서부터 터득된 진리들은 내면적으로 보다 깊이  유입되든가 아니면 쫓겨난다

중생(重生)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보시기에 스스로 중생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진리들은 더욱 크게 증대된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정동(애정 affection)안에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중생에 속한 진실된 행위에 가까이 이르게 되면 이와 같은 진리들은 그들에게서 박탈(剝奪)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내적으로 움츠러들고 그리고 그 때 그 사람은 황폐(荒廢desolation)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이 계속되기 때문에 이런 진리들은 점차적으로 자연적인 것 안에 다시 되돌아오고 거기에서 선과 결합한다.

그러나 중생과정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보시기에 스스로 중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자들에게서도 진리들은 실제로 증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명성, 영예, 재물 따위의 목적을 위해 이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 정동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러 해 동안 숙달하고 그리고 그들 자신의 시각에 이런 진리들을 복종시키게 되면 그때 그들은 그것들을 믿지도 않거나 또는 부인하거나 또는 그것들을 온갖 거짓들로 바꾸어 놓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진리들은 안으로 끌어 드려지지 않고 오히려 비록 그것들이 이 세상에 있는 목적들을 위해서 기억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생명이 없는 것이므로 그것들은 모두 버려지게 된다.   이 상태를 가리켜 성경에서는 황폐(荒廢) 또는 박탈(剝奪)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전자의 황폐의 상태는 외관적이지만 이에 반하여 박탈의 상태에서의 황폐는 절대적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전자의 상태에서 사람은 전적으로  진리들을 빼앗기지 않지만 에에 반하여 박탈의 상태에서는 사람은 전적으로 진리들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AC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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